지난 23일 LG배 결승전에서 커제 9단이 사석 관리 규정에 대해 벌칙이 내려지자 항의하고 있다. /바둑TV

중국 억지일까 한국 운영 미숙일까. 지난 23일 막을 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바둑 기왕전 결승에서 중국 간판스타 커제(柯洁·28) 9단이 사석(死石·따낸 돌) 규정 위반으로 반칙패와 기권패를 당해 변상일(28) 9단에게 우승을 내준 뒤 한·중 바둑계 반상(盤上) 밖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석을 사석통(바둑통 뚜껑)에 보관하지 않으면 벌칙을 주는 내용이다. 이후 중국위기협회(중국바둑협회)는 “경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기원은 3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일단 중국 측이 대회 전 규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경기에 임한 만큼, 규정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위빈(兪斌) 중국 국가대표 감독은 결승 1국 직전 커제에게 사석 규정을 직접 안내했다.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기원도 사석 관리 규정이 지난해 11월 도입됐고, 대회 전부터 중국에 공지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사석 규정 자체엔 항의하지 못하고 심판이 중간에 (규정 위반에) 개입하면서 흐름을 끊었다는 우회적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사석 관리 규정은 중국 바둑에는 없다.

중국바둑협회는 23일 커제가 기권패한 뒤 LG배 판정에 반발하며 “결승 3국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성명을 발표했다. 24일 열린 LG배 시상식에 커제를 비롯한 중국 대표팀은 불참했고, 25일에는 올해 개최하는 자국 주최 중국 갑조 리그, 중국 여자 갑조 리그 등에 외국 초청 선수를 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갑조 리그에는 신진서 9단과 박정환 9단, 변상일을 비롯, 한국 기사들과 대만·일본 기사들이 초청 자격으로 뛰고 있었다. 겉으로는 “자국 유망주를 양성하고 공정한 경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LG배 결과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해석이다. 지난 14일 갑조 리그 폐막식 때 창하오(49·常昊) 중국바둑협회 주석(회장)이 “지난 20년 동안 유지해 온 중국 선수 보호 조항(개인상은 중국 선수에게만 시상)을 없애고 용병(초청 선수)에게도 공정한 시상을 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다른 행보다.

중국 반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월) 11일까지 한국 주최 세계 대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면서 논란을 키우는 양상이다. 6일부터 한국이 주최하는 1회 쏘팔코사놀 세계 최고 기사 결정전(우승 상금 2억원)에 중국 기사들이 불참하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 대회는 무기한 연기됐다. 이어 17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농심 신라면배 세계 바둑 최강전 3차전도 관건이다. 아직 중국이 불참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이 (LG배) 심판 징계나 LG배 재대국 등을 요구하며 또다시 불참을 선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기원은 3일 운영위에서 사석 관리 규정을 조정하고, 심판 개입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농심배 개막 전까지 중국과 협의해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한다”며 “지난 20년간 많은 국내 기사가 요구해 만든 규정인 만큼 없애기보단, (사석 관리 위반) 적발 시 바로 벌칙을 주기보단 주의 단계를 거치는 등 반발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