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도심에서 ‘봄날의 마라톤 축제 2025 서울하프마라톤(서울특별시·조선일보사·서울특별시체육회 공동 주최)이 열렸다. 곳곳에서 개성을 뽐내는 특이한 복장을 한 참가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핑크색 토끼 복장에 선글라스를 쓴 하프 코스 참가자 최영수(33)씨는 이날 오전 손에 빨간색 부부젤라를 들고 광화문광장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이번이 서울하프마라톤 3번째 참가라는 최씨는 특이한 코스프레 복장을 좋아한다. 과거에도 일본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 코스프레를 하고 참가한 적이 있다. 최씨는 “두꺼운 털옷 탓에 조금만 뛰어도 남들보다 땀을 더 많이 흘려 힘들지만, 지나가는 사람들과 관중이 응원을 더 많이 해주는 덕분에 힘이 난다”고 했다. 부부젤라는 거리를 알리는 용도다. 1km 지점마다 불어서 함께 뛰는 러닝크루 회원들에게 알려줬다.
빨간망토를 쓰고 뛴 하프 코스 참가자 최형윤(42)씨는 기록보다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 만화 빨강망토 차차를 흉내냈다. 어렸을 때 많이 봤던 만화였던 덕분에 불현듯 기억이 났다. 최씨의 기록은 1시간 20분대. 원래 조금 더 빠르긴 하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잘 나왔다. 수학학원 강사인 최씨는 “평소 학생들에게도 30분씩은 조깅하라고 강조한다. 이런 이벤트를 계기로 학생들을 러닝에 입문시키고 싶다. 같이 나오는 것도 꿈 중 하나”라고 했다.
매 대회마다 보이는 유모차와 함께 뛰는 부모도 있었다. 유상민(34)씨는 딸 아솔(3)양과 함께 나섰다. 유씨는 딸의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했다. 이전에도 아이와 함께 10km 코스를 두 달에 한 번 꼴로 뛰면서 단련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평일 오후나 토요일 아침에 짬짬이 뛰었다. 유모차를 미는 건 2배로 힘들고, 아이와 함께 뛰어야 하기 때문에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뛸 수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딸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즐겁다. 유씨는 “언제나 딸 곁에는 아빠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배한별(40)씨는 여름 휴가철 복장으로 코스를 누볐다. 핑크색 하와이안 셔츠와 함께 어깨에 우쿠렐레(악기)를 메고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배씨는 사회복지기관의 상담사. 다른 대회에서는 직장인 컨셉으로 정장 입고 달렸는데, 이번 서울하프마라톤에선 휴가를 떠나는 기분으로 이런 착장을 준비했다. 배씨는 “러닝이 나에게는 일상 속 휴가와 같다”라고 했다. 그동안 아들 둘을 낳고 육아하느라 뛰지 못했는데, 2년 전부터 다시 러닝을 시작했다.
배종훈(59)씨는 근육병 앓는 아들 재국(29)씨의 휠체어를 밀고 1시간 53분 7초의 기록으로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배씨는 마라톤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2013년부터 휠체어를 밀고 국내외를 다니고 있다. 2015년엔 뉴욕 마라톤, 지난해엔 보스턴 마라톤에서도 뛰었다. 지금까지 풀코스 완주만 50번에 달한다. 덕분에 9살 때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 진단을 받으면서 10년 더 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들었던 아들은 지금까지 웃으면서 바람을 느끼고 있다. 배씨는 “아들이 마라톤을 좋아하는 한 죽을때까지 뛰어 볼 생각”이라며 “아들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뛰어서 데려다 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