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어제 기사를 보고 많이 힘들었다.”

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대호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회장은 감정에 복 받친 모습이었다.

이대호는 하루 전 논란이 된 '판공비 셀프 인상 논란'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법률대리인과 함께 자리에 선 이대호는 "판공비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한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과 관련하여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서 이대호는 선수협회장 판공비 인상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해 3월까지 공석인 선수협회장 자리에 새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개최된 임시이사회에서 10개구단 대표 중 한 명으로 참가한 그는 새 회장 선출을 위해 판공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고, 이후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이대호는 회장 판공비를 6000만원이 아닌 1억원으로 증액하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사회는 선수협 사무국의 의견을 받아들여 판공비를 600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가결했다.

이에 대해 이대호는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당시 선수들 모두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고참 입장에서 여러 입장을 이야기했고, 다른 선수들도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 과정에서 결정된 게 6000만원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임시이사회 참가가 선수협회장 취임을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었느냐는 물음에 대해선 "나는 원래 회장 후보가 아니었다. 다함께 선수협 문제를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임시이사회에) 30명이 모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판공비 이야기가 나왔다"며 "당초 회장 선출을 위한 10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그들 뿐만 아니라 후보군을 확대해 선출하자고 의견이 모였다. 총회에서 '최고 연봉 선수가 회장직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의견이 나와 내가 추대됐다"고 설명했다. 또 "솔직히 나는 회장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가 회장을 맡든 선수들을 위해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의견을 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당선이 될 줄 알았다면 판공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런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한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굳이 했겠느냐. 오로지 선수협을 위해 회장이 선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의견을 낸 것이다. 그동안 운동과 회장직을 병행해왔고, (판공비 지급이) 관행으로 이어져 온 부분이라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문제가 될 줄 알았다면 벌써 시정했을 것"이라며 "선수협은 선수들의 목소리를 이사들이 반영해 결정을 하는 기구다. 내 의견이 절대적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대호는 판공비 인상 과정에서의 이사회 회의록이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공개 여부에 대해 법률 검토를 통해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대호와 동석한 법률대리인은 여지껏 감사 과정에서 판공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이대호 회장 조차 관행상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시정되지 않은 것은 회장 취임 후 인수인계 절차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앞으로 그 부분에 대해 시정할 계획이며, 차기 회장부터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대호가 회장 취임 후 데려온 사무총장의 판공비 현금 수령 및 유용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임 사무총장은 논란이 불거지자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 이대호는 "며칠 전 관련 내용을 알았다. 사무총장이 모르고 했다고는 하지만 문제 소지가 있다고 봐 '책임을 지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제 내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함께 물러나기로 했다"며 "조금 더 팬들과 다가가고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모셔온 분이다. 다른 취지로 데려온 것은 아니다. 선수협이 조금이나마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부적절한 일이 벌어져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일각에선 이대호가 판공비 이상의 금액을 쓰면서 선수협 회장 활동을 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대호는 "선수협 회의나 선수들과의 식사, 미팅, 이동 경비에 판공비를 썼다. 활동을 하다 보면 판공비 이상의 돈을 쓰는 것은 사실"이라며 "선수협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결과적으로 안 좋은 모습으로 임기를 마치게 됐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대호는 "선수협 회장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선수들이 뽑아줘야 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차기 회장 선출 후보에서 내 이름은 빠졌다. 선수들이 투표를 해 (차기 회장을) 선출할 것"이라며 "내 임기 동안 이런 논란이 불거졌다. 잘 시정이 돼 차기 회장에게 자리가 돌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