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중국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시 타이쯔청 기차역.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키 크로스컨트리가 열리는 경기장과는 약 2㎞ 떨어져 있었는데도, 눈앞이 뿌예질 만큼 ‘얼음 수증기’ 같은 고운 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날 장자커우시 날씨는 온종일 ‘맑음’이었다. 길에 쌓여 있는 눈을 집자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빠져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을 가득 덮은 눈은 전부 기계로 만든 인공 눈이었다.
5일에 경기를 시작하는 스키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은 사방이 기계 소음으로 가득했다. 강한 바람이 나오는 원통형 기기를 들쳐 멘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보도의 눈을 치웠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형 제설기는 경기장 안쪽을 다듬었다. 언덕 곳곳에선 인공 눈 제조기가 눈을 연신 뿜어냈다. 발밑에 있는 눈 조각을 들어 손아귀에 조금 힘을 주자 ‘푸석’ 하며 설탕 가루처럼 흩어졌다. 눈 뭉치를 만들어보려 해도 금세 부서졌다. 인공 눈은 천연 눈과 결정체가 달라 잘 뭉쳐지지 않는다.
◇대륙의 ‘인공 눈 굴기’
이번 동계올림픽 설상(雪上) 종목은 베이징에서 150㎞ 정도 떨어진 장자커우, 약 74㎞ 떨어진 옌칭에서 열린다. 일조량 등의 이유로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중국이 눈과는 거리가 먼 곳을 동계올림픽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빙상 종목을 개최하는 베이징에서 고속철도로 한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데다, 산이 많아 스키 코스를 만들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베이징이 사상 처음으로 동·하계올림픽을 전부 개최한 도시라는 간판을 달길 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개최 신청을 하면서 장자커우의 산을 인공 눈으로 덮겠다는 계획을 내세웠고, 결국 유치에 성공했다. 모든 분야에서 자본과 인력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이었기에 가능한 해결책이었다. 인공 눈만으로 올림픽을 치르는 건 역대 최초다.
중국이 인공 설산을 만드는 방식은 이렇다. 11개의 대형 물탱크를 가동해 장자커우시 주변 저수지와 토양에서 물을 끌어온다. 약 100㎞ 떨어져 있는 저수지까지 수로(水路)를 연결했다. 끌어온 물을 430개 인공눈 제조기에 넣어 얼리고 이곳 일대에 뿌린다. 끝으로 제설(除雪)기로 경기장 모양을 만들고 길을 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회 동안 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800개를 채울 만한 정도로 많다. 알파인 스키와 썰매 종목이 열리는 옌칭도 100% 인공 눈을 만들어 쓴다.
◇앞으로도 인공 눈 100%?
인공 눈을 사용하는 것은 베이징이 처음은 아니다.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인공 눈 비율은 점차 커졌다. 2014년 소치 대회는 80%, 2018년 평창 때는 90%가 인공 눈이었다.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변화하면서 경기에 필요한 적설량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1920~1950년대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균 기온은 0.4였는데, 올해 베이징은 6.3도나 된다. 이런 기후 추세라면 앞으로 열릴 올림픽도 100% 인공 눈으로 치러질 수 있다. 인공 눈은 사실 반(反)환경적이다. 갑자기 많은 물을 끌어모으면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변할 수 있다. 또, 녹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인공 눈에 넣은 화학 물질이 녹으면서 땅에 흡수된다. 이번 올림픽을 친환경으로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던 중국도 눈만은 어쩌지 못해 입을 다물고 있다.
선수들이 인공 눈에 더 크게 다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대회 여자 바이애슬론에 출전하는 조한나 탈리해름(29·에스토니아)은 “얼어 있는 인공 눈에서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그만큼 더 위험하다”며 “넘어지면 푹신한 천연 눈과는 달리 크게 다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기력 저하도 우려된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크로스컨트리에서 쉽게 속력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천연 눈에 익숙한 북유럽 선수들은 장자커우 경기장에서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 눈이 한국 선수들에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메달권이 유력한 남자 스노보드 알파인 이상호를 포함한 한국 선수단은 90% 인공 눈을 사용하는 평창에서 오래 훈련했다. 봉민호 알파인 스노보드 감독은 “북유럽 선수들이 인공 눈에 고전할 때, 익숙한 우리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장자커우=이영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