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이뤄낸 오상욱은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고비였던 경기로 파레스 아르파(캐나다)와 8강전을 꼽았다.
오상욱은 시상식 후 취재진과 만나 “당연히 아론 실라지(헝가리)가 8강에 올라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 선수가 올림픽 때만 신들린 선수라 한 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캐나다 선수가 올라와 당황했다”고 했다. 런던·리우·도쿄 올림픽에서 3연속 우승한 실라지는 이날 16강에서 아르파에 일격을 당했다.
오상욱은 “데이터가 하나도 없는 선수라 불안한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뒤에서 원우영 코치님이 잘 잡아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며 “코치님이 ‘널 이길 사람은 없다. 네가 할 것만 하면 돼’라고 해주셔서 멘털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오상욱은 결승에선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은 끝에 15대11로 이겼다. 그는 “상대 전적에서 내가 밀리는 선수였는데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들어왔을 것이란 대비를 잘 한 것이 승리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상욱은 14-5까지 점수를 벌렸다가 내리 6점을 준 끝에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는 “막판엔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날 때는 신발끈을 묶거나 하면서 재정비를 했던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했다.
오상욱은 우승 순간 가장 생각났던 사람은 도쿄 올림픽의 영광을 함께 누렸던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 도쿄 올림픽 당시 오상욱은 막내 에이스로, 김정환·구본길·김준호와 호흡을 맞춰 단체전 우승을 이룬 바 있다. 김준호가 대표팀을 은퇴했고, 김정환이 부상 등으로 올림픽 출전이 불발되면서 이번엔 신예 박상원과 도경동이 합류한 ‘뉴 어펜저스’가 꾸려졌다.
오상욱은 “김정환·김준호 선수가 대표팀에서 보이지 않게 됐을 때가 생각이 많이 난다”며 “형들과 한솥밥 먹으면서 내가 이렇게 클 수 있었는데 빈 자리가 참 컸다”고 했다.
오상욱은 도쿄 올림픽 이후 두 차례 큰 부상이 있었다. 2022년 12월 연습 경기 도중 실수로 상대 발을 밟아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고, 올 초에도 오른 손목 인대 부상으로 깁스를 했다. 오상욱은 “부상으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최대한 몸을 굴려보자’며 훈련을 독하게 한 것이 부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단체전, 파리에선 개인전 금메달을 거머쥔 오상욱은 단체전 금메달이 더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무언가 함께 이겨내고 모자란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단체전이 우승의 맛이 더 있다”며 “이제 개인전 우승을 달성했으니 남은 단체전에서 3연패를 이루고 편히 쉬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사브르 남자 단체전은 31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