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양궁이 올림픽 단체전 10연패의 신화를 완성했다. 그 비결 중 하나로 한국 여자 선수들의 ‘강심장’이 꼽힌다.
여자 양궁 대표팀(임시현‧남수현‧전훈영)은 29일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결승전에서 중국을 세트 승점 5대4로 꺾으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금메달을 놓치지 않은 한국 여자 양궁은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여기에는 ‘맏언니’ 전훈영(30)의 활약이 컸다. 전훈영은 1세트에서는 모두 10점을 기록했고, 2세트에서도 10점‧9점을 기록해 한국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4세트에서는 연속 10점, 슛오프에서도 10점을 올리며 금메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전훈영의 활약 뒤에는 ‘강심장’이 있었다는 평가다. 성인이 움직이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평균 심박수는 60~100bpm(분당 심장 박동수)이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는 긴장도가 올라가 심박수가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딴 안산의 심박수는 마지막 화살을 쐈을 때 117bpm을 기록했다. 결승 상대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이 순간 심박수는 168bpm이었다.
전훈영의 심박수는 결승전 무대에서도 휴식을 취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70~80bpm 사이를 오갔다. 세자릿수 심박수를 보인 적은 없었다. 4세트 전훈영의 심박수는 76bpm까지 내려갔다가 활을 쏘기 직전 81bpm까지 올랐다. 그 결과는 10점이었다.
반면 중국 안취쉬안의 심박수는 최고 108bpm까지 올라갔다. 당시 안취쉬안은 8점과 9점 사이에 활을 쏴 라인에 걸린 9점을 얻어냈다. 안취쉬안이 심박수 88bpm을 기록한 3세트, 그는 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10점을 쐈다.
심박수와 양궁 경기 결과와의 연관성은 연구로도 입증됐다. 중국 난징대 연구진이 122명의 양궁 선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활을 쏘기 전 심박수가 높은 선수들은 점수가 일관되게 낮았다.
한국양궁협회는 2019년 6월 네덜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심박수 중계 기술을 테스트하자 향후 이 기술이 큰 대회에서도 쓰일 수 있다고 보고 일찌감치 국내 훈련 환경에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회장사인 현대자동차 이노베이션 부서와 함께 센서 착용 없이 영상 카메라로 심박수 측정을 하는 시스템 개발에 나섰고, 2021년 초에는 완성된 시스템을 대표팀 훈련에 도입했다.
양궁 대표팀은 심박수 산출 시스템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맞춤 훈련을 진행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축구 경기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기도 했다.
또 충북 진천선수촌에서는 영어와 불어로 녹음한 장내 아나운서 멘트는 물론, 관중의 환호성까지 모든 상황을 파리 경기장과 동일하게 만들어 놓은 뒤 훈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결승전 슛오프에서도 ‘명궁들의 강심장’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