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스타’가 나왔다. 28일(현지 시각)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오예진(19·IBK기업은행)이 243.2점으로 결선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이 종목 세계 랭킹 35위로 대회 전까지 메달 후보로 평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날 열린 본선에서 전체 2위로 결승에 오르더니, 결승에서 침착한 실력을 보여주며 금빛 총성을 울렸다. 함께 출전한 김예지(32·임실군청)는 241.3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예진과 김예지는 이날 경기 내내 1·2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했다. 잠시 3위 자리로 내려앉기도 했으나 시종일관 주도했다. 결선 경기는 각 선수가 10발씩 쏜 다음부터는 2발 쏠 때마다 점수가 가장 낮은 선수 1명씩 탈락하는 구조. 둘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아 메달 색깔을 두고 경쟁했다. 1발당 만점은 10.9점이다.
오예진은 첫 발부터 10.7점을 쏘면서 앞서나갔다. 10발까지 마쳤을 때, 오예진이 101.7점 1위, 김예지가 101.5점 2위였다. 12발 이후 둘은 1위와 2위를 주고받으며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마지막으로 둘만 남고 금메달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 오예진은 222.6점, 김예지는 221.8점이었다. 여기서 김예지가 첫 발 9.7점에 그치자 오예진은 10.0점을 쏴 점수 차를 1.1점까지 벌려 사실상 금메달을 확정했다. 오예진은 최종 243.2점으로 올림픽 결선 신기록까지 세웠다.
오예진 금메달은 펜싱 오상욱에 이어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한국 사격은 지난 도쿄 올림픽에선 김민정(여자 25m 권총) 은메달이 유일한 메달이었다. 절치부심해서 나선 파리 올림픽에서 전날 박하준-금지현이 혼성 공기소총 은메달을 합작한 데 이어 이날 오예진·김예지가 금·은메달을 가져오며 부활을 알렸다.
오예진은 중학교 1학년이었던 2018년 친구를 따라 사격장에 갔다가 사격에 입문했다. 친구가 “1발만 쏴보라”고 한 게 사격 인생 시작이었다. 고3이었던 작년엔 출전한 모든 고등부 대회에서 우승을 석권하기도 했다. 메달 후보로 꼽히진 않았으나 스스로는 금메달만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 후 “항상 금메달을 상상했다. 결선에서 금메달을 확정 짓는 마지막 발을 쏘고 총에 안전핀을 채우고 내려놓은 뒤 돌아서서 두 팔 벌려 소리 지르는 장면을 계속 상상했다”며 기뻐했다.
오예진은 “메달 유력 후보는 아니었지만 딱히 그런 평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며 “내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했다. 그는 “훈련도 올림픽이라고 특별히 달리 준비하지 않았다. 평소대로 하면 잘할 거라고 믿고 훈련했다”고 말했다. 오예진은 “올림픽 메달을 땄으니 좋아하는 강아지 사모예드를 키우고 싶다. 마라탕도 너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오예진 소속팀 IBK기업은행 채근배 감독은 “깜짝 금메달이 아니다. 결선에만 가면 무조건 메달을 딸 거라고 봤다”며 “올림픽 전에 조금 부진해서 관심을 못 받은 것 같은데 오히려 약이 된 것 같다. 과도한 관심을 받지 않고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친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오현석씨는 “딸이 사격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 마치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간 맞춰서 차로 연습장에 데려다줬다”며 “결선 진출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메달에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 기쁘고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예지 은메달도 값진 성과다. 주 종목은 25m 권총. 올해 바쿠 월드컵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비(非)주력 종목인 10m 공기권총에서 메달을 목에 걸면서 남은 25m 권총 경기 전망도 밝혔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았다. 그는 “무조건 두 종목 모두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면서 “예진이 금메달을 축하한다. 앞으로 사격계를 이끌어나갈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예지 역시 혼성 공기소총 은메달리스트 금지현처럼 ‘엄마 사수’다. 다섯 살짜리 딸이 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 시차 때문에 딸과 영상 통화를 많이 못 했다”며 “얼른 딸에게 메달을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