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훈련장 앵발리드에는 반입이 안 됐던 페트병이 펜싱 경기장 그랑팔레에서는 가능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에게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직원들 판단이 경기장마다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불어 ‘사 데팡(ça dépend)’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한국말로 바꾸자면 ‘그때 그때 다르다’라는 뜻에 가깝다.
파리 올림픽 곳곳에서 ‘사 데팡’의 순간들을 만난다. 27일 파리 센강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 펜싱 경기가 열리는 그랑팔레로 걸어가려 했다. 그런데 진행 요원들은 건너갈 수 없다고 했다. 사이클 경기 때문에 강 주변을 전부 통제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직위는 교통 정보 앱이나 미디어 센터 등에 이를 전혀 공지하지 않았다. 결국 10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도보와 지하철을 통해 돌아간 끝에 1시간이 걸렸다. 항의해도 의미 없다. ‘사 데팡’이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단과 기자 및 조직위 직원들의 동선을 분리하는 건 국제 대회 기본이다. 선수들 집중력을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대회 경기장엔 기자, 진행 요원, 선수가 엉켜서 돌아다닌다. 유니폼을 입고 땀 흘리는 선수가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야 한다. 기자들이 감독과 코치 대화를 고스란히 옆에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일반 통행로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지나갈 수 없어지기도 한다. ‘사 데팡’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을 물으면 관계자마다 다르게 안내한다.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셔틀버스가 훈련장으로 갈 때마다 운전기사 각자가 아는 길로 다녀서 늘 운행 시간이 다르다고 한다. 식당 음식은 날마다 제공되는 양이 다르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고기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고 한다. 한국 수영 대표팀은 선수촌을 떠나 경기장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탁구 대표팀은 버스를 따로 빌려서 시내를 다니고 있다. 항의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사 데팡’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만 하면 다행이다. 참가자들이 위해를 입을 위기도 수차례 있었다.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선수단은 라커룸과 거리 등에서 절도를 당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냈는데도 뚜렷한 대응이 없었다. 이것도 ‘사 데팡’이기 때문이었을까. 다음은 누군가 다칠 수도 있다. 이제는 ‘사 데팡’이라고 넘어가기 어려울 때가 올지도 모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