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다이아몬드 딜러나 공상과학영화 속 천재 저격수 같다.”
1일(현지 시각) 구독자 120만명이 넘는 미국 대표 스포츠 매체 ‘디 애슬래틱(The Athletic)’ 홈페이지에는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멋진(the coolest) 사격 선수’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큼지막한 사진이 올라왔다. 태극마크가 그려진 흰색 야구 모자와 사격용 조준경·눈가리개를 착용한 채 무표정으로 턱을 치켜든 사진 속 인물은 사격 공기권총 10m 은메달리스트 김예지(32·임실군청). 이 매체는 “한국 사격 선수 김예지는 현재까지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중 한 명”이라며 “마치 뤽 베송 감독 영화 속 캐릭터 같다”고 했다.
김예지가 파리 올림픽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경기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해외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X(옛 트위터)·틱톡 등에서는 김예지의 이번 올림픽 경기뿐 아니라 과거 경기 영상들까지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김예지 신드롬’은 지난달 28일 여자 공기권총 10m 결선 경기 직후 시작됐다. 특유의 냉철한 표정과 SF영화 소품 같은 사격용 장비, ‘올 블랙’ 의상의 조합이 마치 “냉혈한 킬러 같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실점이 나왔을 때 잠시 미간을 찌푸리거나 과녁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면이 날카로운 느낌을 증폭시킨다는 의견도 나왔다. 팔로어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해외 유명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 “얼음처럼 차가운(stone-cold) 강렬한 아우라”라며 열광했다. 한 유명 틱톡 인플루언서는 “그녀는 금메달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확실히 얻었다”고 했다.
여기에 지난 5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사격 월드컵 경기 영상도 덩달아 소환됐다. 영상 속 김예지는 검은색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쓴 채 무심한 표정으로 한 발을 쏜다. ‘세계신기록’이란 결과를 보고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압권. X에서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댓글을 남겼다. 머스크는 “액션 영화에도 사격 세계 챔피언이 나온다면 멋질 것 같다”며 “김예지를 액션 영화에 캐스팅해야 한다. 연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감탄했다.
해외 언론들도 앞다퉈 김예지를 집중 조명했다. CNN은 “믿기지 않을 만큼 멋지다. 무심한 표정으로 세계 기록을 깨고,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라며 “김예지의 모자와 안경은 사격 경기장에서는 단지 기능적인 장신구일 뿐이지만, 런웨이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미 NBC방송도 “김예지가 파리 올림픽의 벼락 스타로 떠올랐다”며 “미래적인 스타일의 안경과 강인한 태도가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고 했다. 패션 매거진 GQ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김예지가 파리 올림픽 패션 스타가 됐다’는 기사에서 “(김예지의) 사이보그적인 유니폼이 네티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인기의 상징인 밈(meme·인터넷 등지에서 유행하는 콘텐츠)과 창작 콘텐츠도 쏟아진다. 인공지능 스타트업 창립자 트렁 판은 영화 캐릭터 존 윅(키아누 리브스)·로버트 매콜(덴절 워싱턴)·제이슨 본(맷 데이먼)과 김예지를 한데 묶은 사진을 올리며 “내가 꾸린 팀”이라고 했다. 김예지를 일본 애니매이션 ‘주술회전’ 속 주인공 ‘고죠 사토루’에 빗댄 사진도 다수 공유됐다. 이 캐릭터는 검은 천으로 된 눈가리개와 검은색 의상이 트레이드마크다.
지난달 28일 열린 경기에서 김예지는 깜찍한 코끼리 인형이 달린 수건을 벨트에 매달고 있었다. 다섯살배기 딸에게 받은 선물이라고 한다. 냉철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대조되는 ‘반전 매력’이 돋보였다. 김예지는 이번 올림픽 전후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여러 차례 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달 28일 은메달을 목에 건 직후에도 “딸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엄마 조금 유명해진 것 같다고 말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엄마 사수(射手)’의 모습마저도 해외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디 애슬래틱은 “영화 속 암살자들은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거나 어떤 물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예지의 코끼리 수건도) 그런 느낌을 자아낸다”고 했다.
한편 김예지는 2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사격 25m 권총 본선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당초 “25m가 주 종목”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41번째 사격에서 타이밍을 놓치며 0점을 쏜 것이 치명타가 됐다. 본선 경기는 완사 30발, 급사 30발을 쏴서 합계 점수로 순위를 매긴다. 완사는 5분 내에 5발을 쏘기를 6번 반복하고, 급사에선 표적이 3초 등장했다가 7초간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김예지는 완사 30발을 290점으로 무난하게 마쳤지만, 급사에서 제한 시간 3초 내에 격발을 하지 못하면서 결선 진출이 좌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