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2관왕에 오른 오상욱. 특히 개인전 결승전 경기에서 오상욱은 뒷걸음질치다 넘어진 상대방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매너로 화제가 됐다. 오상욱은 “당연한 일인데 화제가 돼 쑥스러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파리올림픽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 결승. 오상욱은 14-8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1점만 더 따면 우승. 그런데 상대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가 뒷걸음질치다 넘어졌다. 그대로 공격을 하면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그는 칼을 내리고 페르자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경기장(그랑팔레)을 가득 메운 관중의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16일 서울 S빌딩에서 만난 그는 그 순간을 복기해줬다. 당시 심판은 사실 “알트(halte·멈춰)”를 외친 상황. 공격해도 점수는 어차피 안 올라간다. “전 그때 알트 못 들었어요. 펜싱에선 그런 경우가 가끔 나와요. 넘어진 선수를 공격하는 건 해선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다른 선수들도 아마 저처럼 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그게 (‘금빛 매너’라고) 화제가 된 건 나중에(단체전 끝나고 난 뒤에야)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쑥스러웠다”고 전했다.

이번이 올림픽 두 번째 출전. 금메달은 3개를 수집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이후에도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파리 이후엔 또 위상이 다르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해 애를 먹는 게 일상이다. “대회 다녀와서 딱 하루 쉬고 일정들이 있는데, 밖에 다니다 보니 인기를 실감한다. 익숙하진 않지만 좋게 끝나니 불러주는 곳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시니 감사하다”고 했다.

오상욱(28·대전시청)은 이번에 (아시아 선수로서) 펜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올림픽,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아시아 선수권을 모두 제패했다. “사실 몰랐어요. 주변에서 말해주니 그때서야 ‘아 그런가’ 했죠. 원래 당장 눈앞에 놓인 것만 보고 걸어가는 성격이라. 무슨 마지막 퍼즐 맞추듯 ‘올림픽만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이다’ 그런 생각 안 했어요.”

파리 올림픽에서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며 2관왕에 오른 오상욱. 특히 개인전 결승전 경기에서 오상욱은 뒷걸음질치다 넘어진 상대방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운 매너로 화제가 됐다. 오상욱은 “당연한 일인데 화제가 돼 쑥스러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다들 한국 펜싱 사브르 대표팀을 ‘어펜저스’로 추켜세우지만 이번 대표팀은 과거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우승을 장담하긴 어려웠어요. (전에 같이했던 선배들만큼) 실력이 월등하진 않았기 때문이죠. 수성이 아니라 도전이란 자세로 임했는데 결과가 좋으니 기분은 더 좋습니다.” 그는 “첫 올림픽인 (도)경동이, (박)상원이가 잘해줬다. 긴장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되레 그런 긴장을 즐긴 듯했다”면서 “앞으로 4연패, 5연패까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대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오상욱은 올림픽 전 부상으로 고전했다. 2022년 12월 연습 경기 중 실수로 상대 발을 밟아 오른쪽 발목이 꺾이며 인대가 파열됐다. 바깥쪽 인대 두 개는 완전히 끊어졌고 하나도 50% 이상 손상됐다. 펜싱을 시작한 뒤 가장 큰 부상. 수술 후 힘든 재활 과정을 거쳐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부활을 알렸다.

그런데 올해 초 오른 손목 인대를 또 다쳤다. 깁스를 한 채 한동안 훈련도 쉬었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발을 뻗다가 다치진 않을까, 손을 다치진 않을까, 맞붙는 게 겁났다”고 전했다. 그러다 형(전 펜싱 선수)이 ‘피하지 말고 그냥 덤벼들어라. 내가 알던 그 동생으로 돌아오라’고 다그치자 각성하고 각오를 다시 다졌다.

파리 올림픽 2관왕엔 운(運)도 따랐다. 개인전에선 강자들이 중간에 많이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4위였던 그가 준결승에선 세계 7위, 결승에선 13위를 만났다. 단체전도 까다로운 상대인 미국을 끝까지 피했다. 2관왕이 확정된 뒤에야 그는 웅장한 그랑팔레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퍼지는 장면을 온전히 느꼈다. “그랑팔레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때야 알게 됐어요. 종일 피스트(piste·펜싱 경기대)에 오르기까지 경기에서 어떤 전술·전략을 쓸지만 생각하다 보니 경기장이 어떤지 아무 감흥이 없었죠. 첫 금메달을 땄을 때도 다음 경기에만 골몰하다 두 번째 금메달을 따고 비로소 시상대에 서니(이번 올림픽 출전을 마무리한 뒤) 이 아름다운 건물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더라고요.”

최근 방송에 출연해서 장기자랑도 하고 유쾌한 모습을 연출했지만 사실 그는 내성적이다. 말도 느릿느릿 하고 어눌한 편이다. 대전 토박이다. “어머니는 맨날 ‘입만 안 열면 훨씬 더 멋있을 텐데’라고 말하셔요. 여자들이 오래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라고 핀잔도 주시고. 그래도 친한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장난도 많이 치고 ‘사람이 의외로 가볍네’란 소리도 듣죠.” 외모는 꽃미남이지만 알고보면 의외로 ‘푼수’과란 얘기다.

그는 펜싱 선수였던 형을 따라 펜싱에 입문했다. “운동 신경도 좋은데 인기 종목인 야구나 축구를 하지 그랬냐”고 묻자 “몰랐어요. 그냥 펜싱이 좋아서 한 건데. 알았다면 그걸 했을 수도 있겠죠”라고 답했다 .

펜싱은 그에게 인생이면서 일과다. “펜싱은 그냥 ‘밥 먹는 거’ 같은 거예요. 일어나서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듯 일상이, 인생 자체가 펜싱이에요. 어렸을 때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등교하고 수학, 국어 수업 듣듯 펜싱이란 그런 의미예요.” 그래서 앞으로 목표도 “또 밥 먹어야죠!”라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