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개척자’ 차준환(24·고려대)이 또 한 번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차준환이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있다. /뉴스1

13일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차준환은 쇼트 프로그램(94.09점)과 프리 스케이팅(187.60점)을 합쳐 총점 281.69점을 받으며 일본의 가기야마 유마(22·272.76점)를 넘고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한 그는 경기 후 “내가 피겨 스케이팅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다시 깨달았다. 다음 올림픽에도 이 설렘을 안고 임하겠다”고 했다.

차준환은 역전을 위해 무리하게 고난도 동작을 하기보단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는데 오히려 승리 요인이 됐다. 그는 “결과론이지만 그것도 내 노력의 결과”라며 “경기 내용에 만족했고 후회가 없어서 어떤 결과여도 상관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를 앞두고 부상 회복에 집중하느라 쉽지 않았다. 연속되는 경기 일정 속에서 신경 쓸 부분이 많았는데, 오늘은 마지막까지 집중하며 잘 마무리한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컨디션을 완전히 끌어올린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뉴스1

가깝게는 2022 베이징, 멀리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경험한 차준환은 “올림픽 무대에서 쌓은 경험이 오늘 집중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했던 차준환은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그리고 이런 대회를 치를 때마다 스포츠의 즐거움과 내가 피겨스케이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깨닫는다”고 했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은 또 다른 설렘을 가져다줄 무대다. 지금 조금씩 목표를 이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진 않지만 제 속도로 성장하고 싶다”며 “이번 아시안게임 역시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좋은 결실을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피겨 차준환이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3위이자 아시아 최강자인 가기야마 유마(22·일본)가 쇼트프로그램에서 차준환에게 10점 가까이 앞선 103.81점을 받아 이변이 없다면 그의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 가기야마는 첫 점프부터 삐끗하더니 연신 넘어지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결국 프리스케이팅 168.95점(3위)에 그쳐 총점 272.76으로 차준환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차준환은 “이번만큼은 자신있게 나에게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기는 보지 않았다. ‘내 경기에만 온전히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완벽하진 않았지만, 위험한 순간을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태도 덕분”이라고 전했다.

13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에서 열린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에 출전한 차준환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올 시즌 내내 발목 부상으로 고생한 차준환은 “스케이트를 신으면 계속 닿을 수밖에 없는 부위여서 까다로운 부상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나았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그래도 악화되지 않는 선에서 회복과 훈련을 병행해왔다.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동작들로 프로그램을 짜다 보니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며 “시즌 중간에 부상은 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무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버텼다”고 했다.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차준환이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뉴스1

차준환은 부상의 후유증과 잦은 경기에 따른 부담으로 “경기 직후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결국 부딪쳐서 이겨내다 보니, 경기 운영 능력 측면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이런 점들은 저 스스로에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김채연(19·수리고)에 대해 차준환은 “경기가 먼저 있었기에 저도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멋진 연기였다”며 “함께 좋은 성적을 거둬 기쁨이 두 배가 됐다. 한국 피겨가 남녀 동반으로 좋은 흐름을 만든 것 같아 더 의미 있다”고 웃었다.

한국 최초의 남자 피겨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한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다음 무대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