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대전 대덕구 정관장 스포츠센터 배구 연습장에서 고희진(왼쪽) 감독과 부키리치 선수가 배구공을 들고 있다. 고 감독은 “부키리치가 성격이 워낙 좋아 사진 찍을 때 말고도 늘 웃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종 기자

올 시즌 여자 프로 배구 초반은 흥국생명 독주였다. 개막 후 14연승. 그러나 외국인 선수 부상 등으로 흔들리자 현대건설이 따라붙었다. 나란히 1위(승점 44·15승 4패)와 2위(승점 43·14승 5패). 그러나 이 양강 구도를 흔드는 팀이 나타났다. 3위 정관장(승점 34·12승 6패)이다.

정관장은 지난 시즌 히잡을 쓴 공격수 메가왓티 퍼티위(26·인도네시아) 활약을 앞세워 정규 리그를 3위로 마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흥국생명에 아쉽게 졌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조용히 힘을 키워 3라운드 전승에 구단 역대 최다 연승 타이기록(8연승)으로 상승세를 탔다. 아직 고지(승점 10 차)가 멀어 보이지만 메가가 부상에서 돌아온 데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국도로공사에서 옮긴 반야 부키리치(26·세르비아)가 힘을 보태면서 대역전을 꿈꾸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지난 7일 만난 고희진(45) 정관장 감독 대전 사무실에는 ‘공감(共感)’이란 두 글자가 표어처럼 크게 붙어 있었다. 고 감독은 “선수들 입장에서 먼저 공감하려 노력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선수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며 “포지션마다 지시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주는 편인데, 이건 끊임없이 소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고 감독은 이슬람 교도 메가와 같이 할랄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선수들과 근처 쇼핑몰에 놀러가는 등 심리적 거리를 없애려 애쓴다. 운동 자체뿐 아니라 개인 고민까지 공유한다. 이런 배려가 자연스레 사기충천으로 이어진다. 부키리치는 “선수들끼리도 서로 원하는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공격하기 너무 즐겁다”고 했다.

정관장은 시즌 초반 주포 메가와 주장 세터 염혜선(34) 부상 공백으로 4연패에 빠지는 등 고전했다. 작년 11월 하위권인 페퍼저축은행전 패배를 끝으로 이후 연승 분위기를 탔다. 그 경기 패배가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고 감독은 “그 경기는 지면 안 됐다. 직전 경기에서 4연패를 간신히 끊은 상태였는데 또 졌다”며 “선수들과 정말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는 선수도 많았고 저 또한 울컥했다. 팀이 더 단단해졌다”고 돌아봤다.

고 감독은 부키리치에 대해 ‘배구 천재’라 부른다. “훈련을 같이 해보니 수비 재능이 천재적”이라고 했다. 부키리치는 8일 현재 득점 5위(397점), 공격 성공률 4위(42.24%)에 리시브도 7위(효율 34.48%)에 올라 있다. 198㎝ 장신이라 수비와 리시브 부담이 큰 아웃사이드 히터를 맡기 쉽지 않을 텐데도 팀 전술을 위해 흔쾌히 적응하고 있다. 고 감독은 “부키리치는 노력파 천재”라며 “3시간가량 진행되는 오후 훈련을 마치고도 늘 추가 훈련을 자청한다. 지도자 생활 중 이런 외국인 선수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부키리치는 “리시브는 그냥 본능처럼 나온다”고 말했다.

올해 연봉 30만달러(약 4억원)를 받는 부키리치는 지난 시즌(도로공사)에 이어 2년 연속 한국에서 뛴다. 그는 “긍정적 성격이라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을 때도 설레는 마음이 컸다”며 “이제는 한국 생활 3년 차라 음식이나 생활 적응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평소 쉴 때는 메가와 함께 한국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한국 언니’들에게 돼지 김치찌개나 삼겹살을 얻어먹기도 한다. ‘언니 3인방’ 염혜선, 표승주(33), 노란(31)은 부키리치·메가 쌍포 활약 못지않은 수훈 선수다. 10년 이상 프로 경력을 가진 베테랑에 국가대표 경험도 풍부하다. 부키리치는 “언니들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다.

정관장은 10일 최하위 GS칼텍스(승점 8·2승 17패)를 상대로 후반기 첫 경기를 치른다. 구단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인 9연승이 1차 목표. 그리고 그 이상을 바라본다. 남자 삼성화재에서 선수와 코치, 감독까지 경험하고 2022년 4월 정관장에 부임한 고 감독은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목표는 챔피언”이라고 선언했다. 부키리치도 “감독님이 요즘 ‘우승할 수 있다’며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하시는데 이제 감염이 된 것 같다”면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