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정관장 염혜선

‘악역’으로 드라마 주인공을 꿈꿨던 여자 프로배구 정관장 세터 염혜선(34)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보여준 그의 부상 투혼은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정관장은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세트 점수 2-3(24-26 24-26 26-24 25-23 13-15)으로 졌다.

원정으로 치러진 1, 2차전을 내리 내줬던 정관장은 안방에서 열린 3, 4차전을 잡아내며 시리즈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5차전도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올해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의 주인공은 김연경(흥국생명)이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코트를 떠나는 김연경이 우승으로 현역 생활을 화려하게 마치는 그림을 모두가 상상했다.

그래서 이번 챔프전에서 정관장은 김연경 우승의 들러리가 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정관장 선수들은 놀라운 투지로 뻔했던 챔프전은 역대급 명승부로 만들었다.

사실 정관장은 현대전설과 3전 2승제 플레이오프(PO)를 마지막까지 치르고 올라와 체력적으로 크게 열세였다.

흥국생명과 챔프전 1차전을 무기력하게 내준 뒤 고희진 감독은 선수들이 뛸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놓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관장은 마지막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끌고 갔고, 그 중심엔 ‘숨은 영웅’ 염혜선이 있었다.

정관장에게 국가대표 세터 염혜선은 없어선 안 될 매우 중요한 선수다.

주포인 메가와 부키리치가 돋보이지만, 염혜선의 현란한 토스가 있었기에 위력이 배가될 수 있었다.

챔프전 진출의 고비였던 현대건설과 플레이오프에서도 정관장은 염혜선이 무릎 부상 여파로 못 뛴 2차전만 패했다. 염혜선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염혜선은 정관장의 엔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던 4차전에선 정교한 토스로 흥국생명 수비진을 교란했고,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김연경의 라스트댄스를 막겠다며 ‘악역’을 자처했던 염혜선은 마지막 5차전에서도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무릎 통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텨냈고 덕분에 메가, 부키리치의 스파이크 쇼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중계 화면엔 잘 잡히지 않았지만, 염혜선은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을 자주 부여잡으며 고통을 참았다.

오른발이 절뚝거리면서도 염혜선은 다시 점프 토스를 올려야 했고, 수비 할 때 온 몸을 던졌다.

어느 장르든 ‘악역’은 환영받지 못한다.

이번 챔프전은 김연경의 마지막을 응원하는 이들이 분명 많았지만, 염혜선의 투혼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13년 만에 정관장의 챔프전 우승을 견인한 염혜선은 아쉽게도 자신의 세 번째 우승 반지를 놓쳤다.

2008년 데뷔한 염혜선은 현대건설 입단 3년 차였던 2010~2011시즌 처음 정상에 올랐고, 2015~2016시즌 두 번째 우승을 맛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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