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신경이 남달랐던 보일러 기름집 막내아들 김하성은 원래 배드민턴 선수를 꿈꿨다. 그런데 키가 작아서, 초등학교 때 라켓 대신 야구방망이로 바꿔 잡았다. 실력이 쑥쑥 늘었고, 체격(키 179㎝)도 노력으로 키웠다.
고교 시절부터 ‘될 놈’으로 이름났던 김하성은 2014년 넥센(현 키움)에 지명돼 그해 한국시리즈까지 뛰었고, 강정호(은퇴)가 미국으로 떠난 이듬해부턴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국가대표 선수로 도약했다. 팀 선배인 강정호와 박병호를 보며 메이저리그를 꿈꾸던 김하성은 마침내 2021년 첫날 “계약 기간 4+1년에 최대 3900만달러(약 424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유니폼을 입는다”고 발표했다. 평균 연봉 700만달러(약 76억원)로, 8년 전 류현진(6년 3600만달러) 보다 파격 대우를 받는 역대 KBO 포스팅 최고 계약이다. 키움 구단은 약 60억원을 이적료로 받는다.
파드리스는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비롯해 김하성 가족을 위한 영어 수업과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별도로 약속하는 등 그를 영입하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했다. 야구도 한국 최고가 되면 어디서든 인정받는다는 것을 김하성이 또 한번 증명했다.
타격·주루에 유격수·2루수·3루수까지 다 돼… 딱 MLB 스타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1969년 미국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창단됐다. 52년이 지난 지금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다. 리그(내셔널리그)에 지구(서부지구)까지 같은 LA다저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우승에 한 맺힌 A J 프렐러 파드리스 단장은 올겨울 작심하고 ‘우승 반지 원정대’를 꾸린다. 한국 출신 김하성(26·키움)과 파격 계약을 했고,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인 다르빗슈 유(35)와 블레이크 스넬(29)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타도(打倒) LA 다저스”로 이글거리는 팀에 김하성이 새 식구로 합류한다.
◇젊음과 다재다능한 수비가 강점
김하성은 역대 한국프로야구(KBO) 타자 최고 대우로 미국에 진출한다. 1일 발표된 계약 내용은 기간 ‘4+1년’에 보장 급여 2800만달러(약 305억원). 연평균 700만달러로 류현진(6년 3600만달러)이나 김광현(2년 800만달러)을 뛰어넘는다. 출전 타석수 등 각종 인센티브까지 더해지면 최대 3900만달러(약 424억원)를 받는다. 키움 몫 이적료는 약 60억원.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역대 다섯 번째 한국 선수인 그가 류현진⋅강정호⋅박병호⋅김광현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파드리스와 계약한 이유는 뭘까. 김하성은 20대 중반이다. 앞서 미국에 진출한 ‘선배’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 자체가 강점이다. ESPN은 “김하성은 아직 절정기가 오지 않았다. 호세 아브레유(2020 아메리칸리그 MVP)처럼 대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지난해 유격수로서 ‘3할 30홈런 100타점’을 쳤다. 타고투저가 극심한 KBO리그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장타를 쏠쏠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발 빠른 내야수임을 입증했다. 탄탄한 어깨와 좋은 선구안, 철저한 자기 관리 능력 등에도 가산점이 붙는다.
김하성이 유격수는 물론 2·3루까지 두루 가능한 ‘내야 수퍼 유틸리티’ 자원인 것도 매력이다. 2016년 시카고 컵스가 증명한 것처럼 내야진이 견고해야 우승 반지 한을 푼다. 파드리스의 홈구장 페코파크는 소금기 먹은 습도 높은 바닷가 공기가 불어와 타구가 잘 안 뻗는 구장으로 이름났기에 조밀한 내야진 구축이 중요하다. 올해 내셔널리그가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김하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새해 첫날 계약 소식을 알려 기쁘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 빠른 볼 대처 능력 키워야
파드리스는 김하성을 위해 2루를 비웠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2위였던 제이크 크로넨워스를 2루에서 외야로 돌리는 강수를 뒀다. 김하성의 내야 동료는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유격수), 매니 마차도(3루수), 에릭 호스머(1루수) 등 최정상급 선수들이다. 그런 만큼 빠른 적응이 관건이다. 프렐러 단장은 ‘매드 맨(mad man)’이란 별명답게 우승 적기라고 판단되면 선수를 화끈하게 영입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바로 내보내기로 유명하다. 그는 올겨울 야구 카드 수집하듯 다르빗슈와 스넬까지 쓸어담고 ‘오직 우승’을 선언했다.
아시아 출신 투수는 성공 사례가 많지만, 야수는 드물다. 일본에서 30홈런 타자였던 쓰쓰고 요시토모(30·탬파베이 레이스)는 2년 1200만달러 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2020시즌 타율 0.197 8홈런 24타점에 그쳤다. 송재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엔 시속 160㎞ 공을 뿌리면서 뱀처럼 휘는 제구력까지 갖춘 투수가 숱하다. 구속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면서 “우승이 목표인 수퍼스타 군단에서 뛴다는 것이 양날의 검일 수 있다. 젊음과 운동신경을 무기 삼아 부담감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