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29·일본)가 지난 10일 미 프로야구(MLB) LA 다저스와 맺은 10년 7억달러(약 9240억원) 계약 중 97%가량인 6억8000만달러는 10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받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오타니가 매년 연봉 7000만달러 중 6800만달러를 계약 기간 종료 후에 받는 ‘전례 없는 연봉 지급 유예(unprecedented deferrals)’에 동의했다”고 12일 전했다. 계약 종료 이후인 2034년부터 2043년까지 무이자로 나눠 받는다는 내용이다.
결국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10년 뛰는 동안 ‘실수령액’은 2000만달러(약 263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연평균 연봉 200만달러(약 26억원)에 그친다. 이는 메이저리그 신인급 선수 연봉이면서, 올해 국내 프로야구 ‘연봉왕’ 삼성 구자욱(30) 2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향후 이율과 화폐 가치를 감안하면 7억달러가 4억6000만달러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오타니가 이런 불리한 선택을 감수한 이유는 월드시리즈 우승 열망 때문. 그는 6시즌 동안 LA 에인절스에서 뛰면서 독보적인 활약을 했으나 포스트시즌 무대에 선 적이 없다. 그래서 다저스에 입단한 뒤 이 갈증을 풀겠다는 각오로 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다저스로선 오타니가 7000만달러 대신 200만달러만 받으면 이 기간 중 다른 특급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팀 연봉이 일정 규모 이상(2억3700만달러)을 넘으면 내야 하는 사치세도 아낄 수 있다. 다저스 올해 연봉 총액은 2억6720만달러였다.
LA가 주세(州稅·13.3%)가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점도 이 같은 지급 유예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나중에 LA를 떠난 뒤 잔여 연봉을 받으면 절세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계약 구조에 대한 비판도 있다. 팀들이 스타 선수를 영입할 때 공수표를 남발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MLB 노사 협약(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조항에는 “특정 선수 계약에 담길 수 있는 지연 보상(연봉 추후 지급) 총액, 또는 지연 보상으로 인한 총 보상 비율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런 유례없는 지급 유예는 오타니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계약 소감 말미에서 “조만간 열릴 기자회견에서 글로는 전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