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MLB(미 프로 야구) 사상 처음으로 ‘50홈런-50도루’를 달성한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와 홈런왕 애런 저지(32·뉴욕 양키스)가 만장일치로 2024년 양대 리그 MVP(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오타니는 22일 발표된 미국야구기자협회 투표 결과 1위 표 30표를 모두 얻으며 내셔널리그(NL) MVP로 선정됐다.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그는 작년 가을 팔꿈치 수술을 받는 바람에 올해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타격에만 전념한 오타니는 타율 0.310, 54홈런, 59도루, 130타점, 134득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역대 최초 ‘50홈런-50도루’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일본 프로 리그를 거쳐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오타니는 LA 에인절스 소속이던 2021년과 2023년 아메리칸리그(AL) MVP로 뽑혔다. 그는 지난겨울 다저스와 역대 최고액인 7억달러(약 9809억원)에 10년 계약을 맺었고, 올해는 내셔널리그에 속한 다저스에서 통산 세 번째 MVP 영예를 안았다. 프랭크 로빈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양대 리그 MVP를 석권했다. 로빈슨은 1961년 신시내티 레즈, 196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MVP에 뽑혔다.
오타니는 북미 4대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2회 이상 만장일치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다. 이번에 그 기록을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NBA(미 프로 농구)에선 스테픈 커리(2015-2016시즌)만 만장일치 MVP를 차지했다. NFL(미 프로 풋볼)에선 톰 브레이디(2010년)와 러마 잭슨(2019년), NHL(북미 아이스하키리그)에선 웨인 그레츠키(1981-1982시즌)와 코너 맥데이비드(2020-2021시즌)가 있었다. ‘빙판의 황제’였던 그레츠키는 정규리그 MVP를 통산 9번 수상했는데, 만장일치는 1번 뿐이었다. 오타니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만장일치 3회라는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7년 만에 3회 MVP를 수상했다. 이는 공동 2위에 해당한다. 배리 본즈가 7회로 가장 많고, 오타니를 포함해 11명이 3번으로 뒤를 잇고 있다. 오타니는 첫 ‘지명 타자 MVP’라는 기록도 썼다. 1973년 MLB에 지명 타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명 타자는 아무도 MVP가 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선 수비 능력도 중요하게 평가하므로, 타격만 하는 지명타자는 공격과 수비를 같이 하는 선수에 비해 공헌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타니라면 얘기가 달랐다. 그는 MVP 수상 후 MLB네트워크와 인터뷰에서 “올해는 투수로 나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 면에서 만회하려고 했다”며 “타자 기록만으로 MVP를 수상해 기쁘다”고 말했다.
오타니는 지난달 뉴욕 양키스와 월드시리즈에선 투혼을 발휘했다. 2차전에서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왼쪽 어깨를 다치고도 부상을 안고 5차전까지 뛰었다. 다저스가 4승1패로 승리하면서 오타니도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기쁨을 누렸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다른 선수들이라면 포기했겠지만 오타니는 달랐다. 한 팔로 뛰면서 팀원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전했다.
오타니는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를 한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왼쪽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구단 측은 오타니가 내년 2월 스프링 트레이닝에 맞춰 팀에 합류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오타니는 “팀이 성과를 내서 나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년에도 우승에 도전해야 한다”며 “이번에 MVP도 받았으니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타니 야구 인생에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투수 최고상인 사이영상과 월드시리즈 MVP 정도다. 오타니라면 사이영상을 받으면서 MVP로 뽑히는 일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내년에 복귀하면 더 자신감을 갖고 마운드에 오르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아메리칸리그(AL) MVP는 애런 저지였다. 그도 기자단 투표에서 1위 표 30표를 휩쓰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저지는 올해 양대 리그를 통틀어 최다 홈런(58개)을 쳤고, 타율 0.322, 144타점, 133볼넷으로 활약했다. 저지는 2022년에 이어 두 번째 MVP 트로피를 차지했다. 다만 그는 LA 다저스와 올해 월드시리즈에선 홈런 1개(타율 0.222 3타점)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