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은 없었지만 ‘수퍼스타’의 존재감은 빛났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31)가 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 개막전(도쿄 시리즈)에서 2안타 2득점으로 활약했다. 4만5000여 명 고국 팬들에게 멋진 귀국 인사를 남겼다. 다저스가 컵스를 4대1로 꺾고 시즌 첫 승을 챙겼다.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가 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개막 시리즈 1차전에서 9회초 2루타를 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도쿄돔은 경기 전부터 말 그대로 ‘오마쓰리(일본어로 축제)’였다. 경기 시작이 한 시간도 넘게 남은 오후 5시 30분부터 오타니를 비롯해 야마모토 요시노부, 이마나가 쇼타, 스즈키 세이야 등 자국 메이저리거를 보려는 관중들이 꽉 들어찼다. ‘딱’하는 소리에 연습 배팅 타구가 외야 담장을 넘어갈때마다 ‘와’하는 짧은 환성이 터졌다. 블레이크 스넬 등 다저스 선수들은 3루석 그라운드의 60여명 취재진과 즉석 인터뷰에 응하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워밍업이 끝나자 블랙핑크·BTS와 같은 K팝의 음악이 쾅쾅 도쿄돔을 울렸고 그라운드엔 미국인이면서 일본 스모의 인기스타였던 고니시키 야소키라가 깜짝 등장했다. 하와이 출신인 고니시키는 1m87cm에 284kg의 거구로, 1990년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스모 선수다. 이어 도쿄돔 불이 꺼지자 관중석은 응원봉 불빛으로 장관을 연출했다.

18일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의 개막 시리즈가 열린 일본 도쿄돔에 가득 들어찬 4만5000여명의 관중들./성호철 도쿄 특파원.

전광판엔 오타니 쇼헤이가 작년 메이저리그 경기 때 홈런 치는 장면이 나왔고, 그때마다 응원석은 빨간색·파란색 응원 불빛이 섞이며 콘서트장처럼 바뀌었다. ‘몬스터가 몬스터를 만난다(Monster meets Monster)’라는 전광판 글귀와 함께 ‘2025 MLB 도쿄 시리즈 개막전’ 막이 올랐다.

경기 전 국가 연주 때는 1980~1990년대 일본 대중음악계 전설 중 하나인 밴드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가 나와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날 오타니를 보러 일본 군마현에서 왔다는 다니가와 씨는 “오타니가 1회, 1번 타자, 초구 홈런을 치는 장면을 기대하고 있다”며 “다섯 명의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1회초 다저스 공격. ‘쇼헤이 오타니~’라는 소개 멘트와 함께 1번 지명타자 오타니가 등장하자 관중석에서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첫 타석에서 오타니가 2루수 땅볼로 아웃됐지만 1·3루 응원석에선 모두 박수가 나왔다. 도쿄돔 전체가 오타니의 홈그라운드였다.

경기 초반은 양 팀 일본인 특급 선발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졌다. 다저스는 야마모토 요시노부(27), 컵스는 이마나가 쇼타(32)를 내세웠다. 야마모토와 이마나가는 나란히 일본 야구에서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 18번을 달고 나와 포크볼을 주무기로 타자들을 공략했다.

시카고 컵스 선발 투수 이마나가 쇼타가 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개막 시리즈 1차전에서 투구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선취점은 컵스가 냈다. 2회말 안타 2개를 연결하면서 앞서 갔다. 1-0. 이마나가는 오타니를 1회 내야 땅볼, 3회 2루수 직선타로 처리하며 4이닝 무안타 무실점으로 다저스 타선을 꽁꽁 묶었다. 하지만 고국 팬 앞에서 다소 긴장한 듯 볼넷을 4개 내주며 4회를 끝으로 일찍 강판됐다. 투구 수 69개. 다소 아쉬웠다.

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카고컵스와의 경기에서 5회초 LA 다저스의 첫 안타를 떄려내는 오타니 쇼헤이/로이터 연합뉴스

이마나가가 내려가자 다저스 오타니가 막힌 혈을 뚫어냈다. 5회초 1사 1루에서 맞은 세 번째 타석에서 컵스 구원 투수 댄 브라운을 상대로 우전 안타를 때려낸 것. 다저스의 경기 첫 안타였다. 일본 특유의 조용한 구장 분위기에서 돌연 3루 쪽 응원석에서 ‘오타니, 홈런 쳐줘!’라는 어린아이 외침이 들린 뒤였다. 이어진 1사 1-3루에서 다저스 한국계 선수 토미 현수 에드먼이 좌전 적시타를 터트려 동점을 만들었고, 컵스 수비 실책에 편승, 오타니가 홈을 밟아 2-1로 역전했다. 다시 1타점 적시타가 터지며 3-1.

LA 다저스 일본인 선발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개막 시리즈 1차전에서 힘차게 투구하는 모습./AP 연합뉴스

다저스 선발 야마모토는 5회말 내야 호수비로 공 단 2개로 2아웃을 잡아낸 뒤 네 번째 삼진까지 곁들이며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5이닝 3피안타 1볼넷 1실점. 작년 ‘서울 시리즈’에서 1이닝 5실점으로 끔찍한 MLB 데뷔전을 치른 악몽을 고국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서 깨끗이 지웠다. 고국 팬을 의식한 듯 이날 야마모토는 지난 시즌 평균 구속보다 더 빠른 직구와 포크볼을 던지며 컵스 타선을 막아냈다.

오타니는 9회초 선두 타자로 나서 우익수 오른쪽으로 뻗는 2루타를 만들었다. 후속 타자 적시타로 다시 홈을 밟으며 4-1.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양 팀은 19일 도쿄돔에서 2차전을 치른다. 다저스는 2차전 선발로 일본인 강속구 투수 사사키 로키(24)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