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90분을 지배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수’란 찬사를 받았던 전설이 세상을 떠났다.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26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지난달 만 60세를 맞았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지난 3일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일주일 만인 11일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이었다. 마약과 알코올의존증 전력이 있는 마라도나는 앞서 두 차례 심장마비를 겪었는데, 세 번째로 찾아온 심장마비를 넘기지 못했다.
◇‘신의 손’ 논란 속 1986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은 26일부터 3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대통령궁에 안치될 예정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곳곳엔 ‘D10S’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D10S’는 신을 뜻하는 스페인어 ‘DIOS’에 마라도나의 등번호였던 ‘10’을 넣어 표기한 것이다. 시민들은 ‘축구의 신’을 이렇게 배웅했다.
마라도나는 브라질 축구 황제로 불리는 펠레(80)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축구 선수로 꼽힌다. 키는 165㎝로 작지만 근육질 몸에서 뿜어내는 스피드와 힘을 바탕으로 화려한 드리블, 감각적인 슈팅, 정확한 패스 능력 등 축구 선수로서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키워나갔다. 만 16세 125일 나이에 아르헨티나 최연소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은 그를 전 세계에 알린 무대였다. 7경기 출전 5골 5도움으로 활약, 아르헨티나의 역대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기며 국민 영웅으로 거듭났다. MVP 역시 그의 차지였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2대1 승)에서 0–0이던 후반 6분 헤딩을 하면서 왼손으로 쳐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주심에게 핸드볼이라며 항의하자 마라도나는 동료 선수들에게 “어서 나를 껴안아. 머뭇거리면 심판이 항의를 받아들일 거야”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내 머리와 ‘신의 손’이 함께 만들어낸 골”이라고 했다.
이 논란의 득점 4분 뒤,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은 그는 50여m 단독 드리블로 수비수 5명을 따돌린 뒤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망을 흔들었다. 월드컵사에 손꼽히는 환상적인 골이었다. 아르헨티나는 1986년 이후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파란만장 인생사
마라도나는 198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팀을 변모시켰다. 이탈리아 리그 만년 중하위권이었던 나폴리를 1986–1987시즌에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8–1989시즌엔 당시 유럽 최고 권위의 클럽대항전이었던 유럽축구연맹(UEFA)컵까지 들어 올렸다. 1990년 나폴리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준결승 때 나폴리 시민 일부가 조국 이탈리아 대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뛰던 1991년 약물 검사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여 출전 정지 징계를 받고, 도망치듯 팀을 떠난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도핑 검사에서 적발돼 대회 도중 퇴출당했다. 개인 통산 네 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을 불명예스럽게 마쳤다. 그는 아르헨티나 보카주니어스에서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한 뒤 은퇴했다.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에 출연해 회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축구는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고 난 뒤로 매일 밤 껴안고 잤다. 그런데 결국 살다 보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슬프게도 지금은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
작년부터 아르헨티나 1부 프로팀 힘나시아 라플라타 지휘봉을 잡은 마라도나는 지난달 30일 생일에 선수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제대로 걷지 못해 부축을 받을 만큼 몸 상태가 나빴다. 공개 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