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2일, 1년 늦게 열린 유로 2020 조별 리그 B조 덴마크와 핀란드 경기 도중 덴마크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32)이 돌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찾아온 것. 의료진이 재빨리 그라운드에 들어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했고, 팀 동료들은 그 주위를 둘러싼 채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빠르고 적절한 조치를 받은 덕에 에릭센 심장은 다시 뛰었다.
그는 심장 제세동기 삽입 수술을 받고 곧바로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하지만 당시 소속 팀이었던 이탈리아 세리에A 인테르 밀란에서 계속 뛸 순 없었다. “심장 제세동기를 삽입한 선수는 경기에 뛸 수 없다”는 리그 규정 때문. 혹시 모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 규정이었다. 결국 그는 인테르와 계약을 해지하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렌트퍼드에서 새출발을 했고, 사고 전 기량을 회복해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었다. 당당히 대표팀에도 복귀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나섰고, 올해 유로 2024에도 출격했다. 그가 쓰러졌던 무대에 3년 만에 돌아온 것. 그리고 그 복귀전에서 화려한 득점포로 ‘인간 드라마’를 완성했다.
에릭센은 17일 슬로베니아와 벌인 C조 1차전에서 전반 17분 선제 골을 넣었다.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요나스 빈이 흘려준 공을 중앙으로 침투하며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득점했다. 덴마크는 후반전에 동점을 허용해 1대1로 비겼지만,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 1100일 만의 유로 복귀전에서 골을 넣은 에릭센은 경기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덴마크 대표로 A매치 131경기에 나서 42골을 넣었지만, 유로 무대에선 첫 골이었다. 그는 “지금 유로에서 내 이야기는 지난 대회와 매우 다르다”며 “경기에 나서는 데 자신감이 있었고,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유로에서 뛰는 건 언제나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유로에서 득점이 없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축구만 생각했다. 내 골로 팀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같은 조에 속한 ‘우승 후보’ 잉글랜드는 세르비아를 상대로 1대0 진땀 승을 거뒀다. 전반 13분 ‘신성’ 주드 벨링엄(21·레알 마드리드)이 헤더 선제 결승 골을 넣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며 추가 득점에 실패했다. 슈팅 수에서 5-6으로 오히려 세르비아에 밀렸다. 벨링엄은 만 21세가 되기 전에 월드컵과 유로 무대에서 모두 득점하는 기록을 세웠다. 잉글랜드 선수로는 1998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골을 넣은 마이클 오언(45)에 이어 두 번째다. D조에선 네덜란드가 폴란드에 2대1로 역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