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은 아르헨티나인들의 하늘색(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 상징 색) 물결로 넘실거렸다. 36년 만에 아르헨티나가 다시 세계 축구 정상에 서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1만3000여㎞를 날아온 이들로 관중석이 들썩였다. 그들은 자국 축구 영웅인 리오넬 메시가 우승 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보며 감동에 젖었다.
이처럼 월드컵 때는 경기장마다 자국 대표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려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몰려든다. 개최국이 48국으로 늘어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더 그런 인파가 몰릴 전망. 그런데 암초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정부는 취임 이후 미국 비자 심사 과정을 대폭 강화했다. 불법 이민을 차단하자는 목적이지만 이게 월드컵에 ‘나비 효과’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국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중미) 월드컵 유치 당시인 2018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모든 국가 선수와 팬들이 차별 없이 미국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지만, 이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많은 해외 팬들이 월드컵 입장권을 손에 넣고도 미국 입국 절차를 밟지 못해 경기장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처럼 전자여행허가서(ESTA)를 통한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따라 미국 입국이 간편한 나라는 43국. 나머지 국가들은 각국 주재 미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거쳐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현재 콜롬비아 국민이 미국 입국 비자 인터뷰를 하려면 신청 후 700일, 튀르키예 560일, 모로코는 332일가량을 기다려야 한다. 페루는 442일, 멕시코 262일 등이다.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3일 기준 465일 남은 상태. 이들 국가 축구 팬들로선 전전긍긍하는 처지다.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기간이 긴데 이들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큰 나라들이라 앞으로 비자 문제가 월드컵 성공 운영에 걸림돌로 작동할 수 있다.
국무부 관계자는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으로 인해 인터뷰 대기 시간은 더 늘어나고, 비자 승인율도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다”고 밝혔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카타르 월드컵 당시엔 ‘하이야 카드(Hayya Card)’를 도입해 입장권 소지자에게는 자동으로 비자를 발급해주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FIFA의 유사한 제안에 대해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어 거부했다. 이 때문에 2026 월드컵이 전 세계 축제가 아닌 미국인들과 일부 국가들만을 위한 이벤트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