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축구 팬들은 설레면서 새벽잠에서 깼다. 세계 축구 정점에서 뛰는 유럽 무대 한국 선수들을 보기 위해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을 펼치던 2000년대 박지성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거머쥔 2020년대 손흥민까지. 하루 걸러 생중계를 보는 게 낙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유럽파들의 팀 내 입지가 일제히 좁아지고 있다.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이탈리아·독일·스페인·프랑스)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생겼다.

그래픽=양진경

한국 대표팀 중앙 수비수 김민재(29)는 최근 비판에 허덕인다. 독일판 스카이스포츠는 15일 “김민재는 이번 여름 이적이 불가능한 선수가 아니다”라며 “바이에른 뮌헨은 김민재를 원하는 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라고 전했다. 방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유는 김민재의 잦은 실수. 김민재는 올 시즌 실점으로 직접 이어지는 실수를 6차례 범했다. 5대 리그 중 1위에 해당한다.

김민재는 지난 13일 도르트문트전에서도 상대 공격수를 막지 못해 실점을 허용했다. 그 6분 뒤 교체됐다. 당시 뮌헨 단장 막스 에베를이 “김민재의 명확한 실수”라고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할 정도였다.

시즌 초반에는 괜찮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아킬레스건을 다치면서 흔들렸다. 최근에는 허리 통증까지 호소한다. 게다가 지난달 이토 히로키, 우파메카노, 알폰소 데이비스 등 뮌헨 수비진이 갑자기 줄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했다. 억울할 수 있지만 현지에서는 “부상 없는 선수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듣는다.

17일 펼쳐지는 인테르 밀란(이탈리아)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그래서 중요하다. 뮌헨은 1차전에서 1대2로 진 탓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 김민재가 비판을 잠재울 기회다.

한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33)은 최근 출전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열린 리그 5경기 중 1경기밖에 풀타임을 뛰지 못했다. 지난 13일 울버햄프턴전에는 아예 나서지 않았다. 안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어서 내보내지 않았다”라고 해명했지만, 크고 작은 부상에도 늘 주전을 꿰차던 손흥민이라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손흥민은 올 시즌 리그 7골 10도움. 지난 8시즌 연속으로 리그 10골 이상을 넣었던 것을 고려하면 노쇠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토트넘 팬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SON OUT(손흥민 아웃)’을 연이어 올리고 있다. 역시 돌파구는 18일 UEFA 유로파리그 8강 2차전. 홈 1차전에서 1대1로 비겼던 만큼 승리 선봉에 서야 한다.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 공격을 이끄는 황희찬(29)은 더 큰 위기다. 지난해 8월 첼시전 이후 지금까지 리그에서 한 번도 풀타임을 뛰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12골 3도움으로 팀 핵심 자원으로 발돋움했던 터라 아쉽다. 시즌 도중 발목과 허벅지 부상으로 7경기를 결장했고, 황희찬을 중용했던 게리 오닐 감독이 경질된 게 컸다.

그사이 경쟁자 예르겐 스트란드 라르센(노르웨이)이 리그 12골을 터뜨려 황희찬 입지는 더 좁아졌다. 최근 번뜩이는 모습을 거의 보여준 적이 없어 방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강인(24)도 소속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주전 경쟁에서 오래전 밀려났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꾸준히 출전했는데, 후반기에 같은 포지션 공격수들인 우스만 뎀벨레, 브래들리 바르콜라(이상 프랑스)가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데다 새로 영입된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조지아)가 빠르게 적응해 설 곳을 잃었다. 요즘엔 중요 경기는 거의 나서지 않고, 다른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리그 경기에만 간혹 선발로 출전한다. 팀을 떠난다는 게 확정시되는 분위기다. 애스턴 빌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EPL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럽 무대를 포기하고 중동으로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유럽 5대 리그에서 꾸준히 출전 시간을 받는 한국 선수는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 이재성(33) 정도다. 비(非) 5대 리그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황인범(29)이 이탈리아 세리에A로 이적할 수 있다는 소식이 위안거리다.

어린 선수들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빅 리그에서 자리를 잡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 EPL 브렌트퍼드 수비수 김지수(21)는 올 시즌 데뷔전을 치렀지만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토트넘과 계약한 양민혁(19)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로 임대 중이고, 배준호(22·스토크 시티), 엄지성(23·스완지 시티) 등도 잉글랜드 2부에서 뛰면서 빅리그 입성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