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레스터시티 몽가(오른쪽)가 스폰서(도박 업체) 로고 없는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8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레스터시티 제러미 몽가(16·잉글랜드)가 뉴캐슬전 후반 29분 교체 투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니폼이 동료들과 조금 달랐다. 가슴 쪽이 스폰서(후원사) 로고 없이 비어 있었던 것. 이는 레스터시티 홈 유니폼 후원사가 온라인 암호화폐 게임 플랫폼 비시게임(BC.GAME)이었기 때문이었다. EPL 규정상 18세 미만 선수는 도박 업체(gambling) 후원사가 표시된 유니폼을 착용할 수 없다. 몽가는 이 때문에 당분간 텅 빈 유니폼을 입고 뛸 전망이다.

다른 팀에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영국 BBC에 따르면 2024-2025시즌 기준 리그 20구단 중 절반 넘는 11팀이 도박 업체를 유니폼 후원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보다 3팀이 늘었다. 이를 두고 “전 세계 10~20대가 EPL 경기를 즐기는데 도박 광고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희찬(29)이 몸담은 울버햄프턴 역시 베트남 온라인 카지노 플랫폼 디벳(DeBet)이 후원사라 황희찬 경기를 보는 한국 중고교생들이 호기심에 이 사이트에 접속할 위험도 있다.

EPL 원년인 1992-1993시즌에는 대부분 팀이 영국 기반 기업을 후원 업체로 뒀다. 박지성이 뛰던 2005-200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복 후원 기업은 영국에 기반을 둔 통신 기업 보다폰(Vodafone)이었다. 하지만 EPL이 글로벌화에 성공하면서 다국적기업들이 후원사로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적극적 업종이 도박업이었다. 이번 시즌 EPL 개막 주말 동안 선수들 유니폼을 통해 도박 광고는 2만9000회 이상 노출됐다. 전년 대비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중소 구단들을 공략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등 재정이 탄탄한 구단은 도박 업체와 손잡지 않아도 된다. 대외 이미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후원 수입이 절실한 비(非) 인기 구단들은 고육책으로 도박업체들과 계약한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EPL 구단과 도박 업체 간 후원 계약 규모는 약 1억 3540만달러(약 1920억원)에 이른다. 도박 업체는 상위권 팀과 경기 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회사 로고를 노출시킨다. 영국에서 도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업체도 있지만 이들은 EPL 인기가 높은 아시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논란이 많아지자 EPL 사무국은 2026-2027시즌부터 도박 업체 유니폼 광고 홍보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로고가 유니폼에서 경기장 전광판이나 훈련복 등으로 옮겨갈 뿐, 실질적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BBC는 “이런 현상은 단순한 유니폼 스폰서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와 도박이 맺는 위험한 동거의 현주소”라고 우려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