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연출 박성찬)은 서양 귀족의 작위 가운데 공작, 후작, 백작에 이어 넷째 등급에 해당하는 자작(子爵)의 이야기다. 젊은 영주 메다르도 자작은 이교도와의 전쟁에 자원 입대했다가 포탄을 맞아 몸이 두 동강 난다. 의사들이 육신의 절반을 살려내는데, 그래서 별명이 ‘반쪼가리 자작’이다. 문제는 생환한 그가 악(惡)한 반쪽만 남은 존재라는 점이다.
환상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겼다. 작가는 마치 ‘지킬 앤 하이드’처럼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절대악’이 영지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가벼운 죄에도 사형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공포 통치다. 나쁜 반쪼가리 밑에서 고통을 견디며 사는 데 익숙해질 무렵, 없어진 줄 알았던 나머지 착한 반쪼가리, 즉 ‘절대선’이 귀향한다. 그렇다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까?
이 연극은 ‘완전한 인간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우화 형식에 담았다. 유랑극단의 광대 복장을 한 배우 6명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굴린다. 인형과 오브제를 활용해 연극적 놀이로 풀어내는 대목은 아이디어가 빛난다. 배우들이 서로 역할을 바꾸기도 하고 역할에서 빠져나와 관객을 향해 질문하기도 한다. 나쁜 반쪼가리나 착한 반쪼가리나 인간에게 실망한 상처받은 영혼이다. 보고 나면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이 떠오른다.
창작조직 성찬파가 만든 ‘반쪼가리 자작’은 2017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되며 마니아 관객이 형성돼 있다. 분열되고 소외된 현대인을 파고들어 흔드는 판타지. 마지막에는 ‘보너스’라며 연주까지 들려준다. 올해 서울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인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국립극단 초청으로 25일까지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