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지난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기획전에 전시된 모습. 높이 26.7cm. /허윤희 기자

1907년 처음 발견된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은 삼국시대 불교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1922년쯤 일본인 수집가의 손에 들어간 불상은 1929년 대구에서 공개 전시됐으나 1945년 무렵 일본으로 유출됐다.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이 불상은 2018년 일본에서 그 존재를 드러냈고, 재발견과 동시에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규암리 불상 매입 환수 논란에 대해 “상업성과 애국주의의 밀착”이라는 비판이 학계에서 제기됐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지난해 말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인식과 수용: 미술 시장, 상업성, 애국주의의 착종’에서 “규암리 불상은 ‘상품’이 되어서 국내 시장에 등장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 상품을 서둘러 환수해야 할 유출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였고, 상업성과 애국주의가 시장에서 만났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뒤엉키면서 불상의 매매 가격만 과도하게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세밀하게 소개하는 5분짜리 영상.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공개됐다. /허윤희 기자

이 불상은 1907년 충남 부여 규암면의 한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관음보살입상 두 점 중 하나다. 한 점은 국보로 지정돼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이 불상은 일본인 의사 컬렉터 이치다 지로가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했다. 이치다가 광복 후 일본에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불상이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박으로 작용하면서 국가기관까지 나섰다. 당시 국내 대표적인 불상 전문가들이 모인 평가 회의에서 불상의 감정가가 42억원이라는 결론을 냈고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를 구입 금액으로 제시했지만, 소장자 측이 3배가 넘는 150억원을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다. 불상은 지난해 호암미술관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등장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지난해 호암미술관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전시된 모습. /뉴시스

이광표 교수는 “불상의 현 소장자가 일본인 사업가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물론, 언제 어떻게 입수했는지, 일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력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며 “내력에 관한 스토리는 고미술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규암리 불상은 존재가 공개되고 매입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내력에 관한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가치 판단의 핵심 정보를 누락한 채 시장에 상품으로 나왔다”고 지적했다. “시장 거래의 기본을 지키지도 않은 채, 유출 문화유산 환수라는 애국주의적 대의명분이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불상이 일본으로 유출된 과정이나 그동안의 소장 과정, 객관적인 가치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성찰이 우선해야 하는데 매입 협상 과정에서 이런 고민과 논의는 모두 생략된 채 ‘무조건 사야 한다’는 식으로 휩쓸리는 것이 우리 문화유산계의 허점”이라며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이 성찰 없이 옆에서 부추기는 현실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