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서울 인사동 사거리에 낯선 간판이 걸렸다. ‘현대화랑’. 당시 27세였던 박명자 회장이 설립한 국내 첫 본격 상업 화랑이다. 화랑이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현대화랑은 1975년 지금의 사간동으로 이전했고, 이중섭·박수근·장욱진·도상봉·천경자 등 거장들이 모두 이 화랑을 거쳐갔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 퍼포먼스도 1990년 화랑 뒷마당에서 펼쳐졌다.
국내 상업 화랑의 효시인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이 올해 55주년을 맞아 첫 전시로 ‘한국 구상회화 4인전’을 개막했다. 한국 구상회화(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의 뿌리이자 근현대 미술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작가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의 전성기 작품 30여 점을 소개한다. 모두 현대화랑과 인연이 깊은 작가들로, 이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70~1980년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나왔다.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은 “미술 환경이 너무 빨리 급변하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우리 미술사의 근간인 근현대 작가들을 다시 소개하는 전시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며 “좋은 작가들이 너무 많지만 작가별 스타일을 볼 수 있도록 4명으로 압축했다. 출품작의 절반 이상이 과거 우리 화랑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이라고 했다.
상실의 시대를 거치며 한국의 자연과 석양, 산, 꽃, 과수원 등을 개성 넘치는 붓질로 담아낸 작가들이다. 평양 출신인 윤중식(1913~2012)은 ‘석양의 화가’라 불린다. 강변에 붉게 물든 하늘과 구름의 오묘한 색채, 굵은 윤곽선과 따스한 색감이 전시장 초입부터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도쿄미술학교를 최우등 졸업하고 평안북도 선천에서 교사로 지내다 전쟁 중 월남한 그는 99세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대동강의 석양을 평생 그렸다. “강, 고깃배, 먼 산, 뭉게구름, 새…. 이 모든 것은 대동강 변에서 스케치하던 시절의 연속”이라고 말한 것처럼, 타들어가는 그리움과 상실감이 창작의 근간이 됐다.
‘산(山)의 화가’ 박고석(1917~2002)은 풍운아 기질이 넘치는 사나이였다.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니혼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1968년부터 산행을 통해 자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가까운 북악산, 도봉산부터 백암산,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이 그의 생활 터전이었고, 영감의 원천이었다. ‘외설악’ ‘선인봉’ ‘쌍계사 가는 길’ 등 출품작을 둘러보면, 두꺼운 유화물감과 힘찬 필치로 완성한 산의 웅장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충북 충주 출신인 임직순(1921~1996)은 꽃과 여인에서 생명력을 탐구했다. 1936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일본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귀국 후 14년간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며 광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빛의 대비와 강렬한 색면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안정된 구도를 추구했고, 직접 현장에 나가 자연에서 얻은 감동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화가로 꼽힌다.
‘화단의 신사’라 불렸던 이대원(1921~2005)은 어떤 규율이나 사조, 유행에도 구애받지 않은 화가였다.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조선미술전람회와 국전에 입선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1950~60년대 모노크롬과 미니멀리즘 경향이 주류를 이뤘던 한국 화단에서 이대원은 한국의 산과 들, 나무, 연못, 돌담, 과수원 등 친숙한 자연을 주요 소재로 택하며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펼쳤다. 풍부한 원색, 짧고 연속적인 붓 터치로 형태와 윤곽을 그린 독특한 방식에 대해 한 프랑스 평론가는 “빛을 데생하는 화가”라고 극찬했다.
박명자 회장은 “1970~1980년대 이곳에서 작품을 봤던 분들에겐 추억을 소환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소장자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다시 만들어서 액자가 각양각색인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고 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굵직한 컬렉터인 방탄소년단 RM 소장품도 3점 나왔다. 전시는 2월 23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