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보물로 지정됐으나 도난당한 장물임이 밝혀져 보물 지정이 취소된 '대명률'. /국가유산청

보물로 지정된 고서가 알고 보니 장물이었다?

2016년 7월 보물로 지정됐다가 도난당한 장물임이 드러난 ‘대명률(大明律)’이 9년 만에 보물 자격을 잃게 됐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열린 문화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 회의에서 ‘대명률’의 보물 지정 취소가 가결됐다고 11일 밝혔다.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유산이 지정 취소되는 건 처음이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 형률(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 서적이다. 보물로 지정됐던 판본은 1389년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은 2016년 지정 당시 “조선시대의 법률은 물론 조선 전기의 서지학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정 4개월 만에 장물임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2016년 11월 경기북부경찰청이 전국 사찰과 고택 등에서 문화유산을 훔친 절도범들을 대거 검거하는 과정에서, 대명률을 넘긴 장물업자가 범행을 실토한 것이다.

보물 지정이 취소된 '대명률' 앞표지. /국가유산청

이 대명률 판본은 원래 문화 류씨 집안이 1878년 경북 경주에 지은 서당인 육신당에 가문의 현판, 고서와 함께 보관돼왔다. 그러다 1998년 서당에 도둑이 들었고, 류씨 집안 원소유주는 유물 81건 235점이 사라졌다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했다. 대명률 등 유물은 2011년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도난신고품 목록에도 올랐다.

경북 지역 사립 박물관장이던 A씨는 2012년 장물업자에게서 1500만원에 대명률을 구입한 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라고 속여 보물 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위 사실이 들통나면서 A씨는 문화재보호법(현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2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당시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행정기본법’을 근거로 보물 취소를 결정했다.

국보·보물이 지정됐다가 해제된 경우는 여럿 있었다. 1996년 조선 수군의 총통(화포)인 ‘귀함별황자총통’이 국보로 지정됐다가 가짜임이 드러나 해제됐고, 2005년엔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보물 ‘낙산사 동종’이 화재로 불타 지정이 해제됐다. 김제 금산사의 ‘대적광전’도 1986년 화재로 전소돼 보물에서 지정 해제됐다.

하지만 지정 자체가 취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지정 해제는 유물의 ‘가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만, 이번 경우는 해당 문화유산이 가치가 없어진 게 아니라 지정 과정에 하자가 있었음을 알게 돼 취소하는 것이라 다르다. 나중에 소유권을 지닌 쪽에서 다시 신청하면 보물로 재지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