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신차 3대 중 1대가 팔리는 중국 시장에서 일본차가 질주하고 있다.
작년 일본차 회사들은 중국에서만 520만대를 팔아 점유율 26%를 기록했다. 중국에서 팔린 승용차 4대 중 1대꼴로 일본차였다는 얘기다. 이로써 일본차는 독일차를 제치고 작년 중국 시장의 외국계 판매 1위(현지생산+수입)에 올랐다. 일본차가 외국계 1위를 한 것은 2012년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외교 분쟁 여파로 역성장한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 외자계의 터줏대감 독일차는 509만대(점유율 25%)에 그쳤다.
일본차의 약진은 코로나 사태 이후의 수요 반등분을 일본차가 가져간 결과로 분석된다. 일본차는 2012년 중국 판매가 반 토막난 뒤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경쟁력 쇄신에 나섰다. 그 결과 판매가 꾸준히 올랐고 중국에서 코로나가 진정된 뒤 자동차 수요가 튀어오를 때 크게 재미를 봤다.
◇도요타 중국 판매 180만대, 11% 성장
특히 도요타가 180만대를 팔아 전년보다 11% 성장한 게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중국 승용차(세단·SUV·승용밴 등) 시장이 6% 감소한 것과 정반대였다. 도요타는 중국 판매가 늘어난 덕분에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5년 만에 세계 판매 1위에 복귀했다. 혼다도 163만대를 팔아 전년보다 5% 성장했다. 중국의 애국 마케팅도 소용없었다. 토종 업체의 판매가 774만9000대(38%)로 가장 많긴 했지만, 전년보다 8% 줄어 전체 시장 평균보다 감소 폭이 컸다.
중국 시장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작년에 연간 2531만대가 팔린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2위 미국보다 80%나 크고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전망이다. 상용차를 포함한 중국 자동차 시장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 감소에 그쳤다. 승용차는 줄었지만, 상용차 판매가 전년보다 19% 증가한 덕분이었다. 반면 유럽(-24%)·미국(-15%)은 시장이 크게 줄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현재 심각한 자금난에 몰려 있다. 도요타·폴크스바겐 같은 우량 기업조차도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 개발비를 충당하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 이런 기술이 꽃을 피워 자동차 회사가 실제로 돈을 벌려면 앞으로 5~10년은 걸린다. 돈 벌 곳은 줄어들고 돈 쓸 곳만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회사가 큰돈 벌 곳은 중국밖에 없다. 유럽·미국 등은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자동차 회사들이 잘못하면 돈 버는 것보다 규제에 따른 벌금을 더 낼 수도 있다. 따라서 일본차가 중국에서 연간 500만대 이상 팔아치운다는 것은 이들 회사가 미래에 대비한 자금력을 비축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 시장 못 잡으면 자동차 회사 미래 없어
일본차의 약진이 무서운 것은 중국이 현재의 최대 자동차 시장일 뿐 아니라, 미래 친환경차 시장의 ‘현금 주머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작년에 전기차(플러그인 포함)만 137만대가 팔렸다. 유럽도 전기차 붐으로 난리였지만, 작년 유럽 전체의 전기차(플러그인 포함) 판매는 105만대로 중국보다 훨씬 적었다.
중국 시장에서 밀리면 자동차 회사로서 미래가 없다는 것은 중국의 친환경차 시장 성장이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불허하고, 신차 판매의 50%는 전기차, 나머지 50%는 하이브리드카로 채울 방침이다. 2035년 중국 자동차 시장을 3000만대로만 추산해도, 연간 1500만대의 전기차와 1500만대의 하이브리드카 시장이 각각 열린다는 얘기다.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높은 도요타·혼다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일본차로서는 지금처럼 판매를 늘리기만 해도 이 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몇 년전부터 도요타 등이 중국 합작 파트너의 하이브리드카 개발까지 돕는 것도 이런 포석이 깔려있다. 어차피 2035년 1500만대의 중국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일본이 다 먹을 수도 없고 중국이 그것을 좌시할 리도 없다. 중국과 협력해 그들 이익을 챙겨줌으로써, 미래 중국 시장의 하이브리드카 판매분을 일본이 나눠먹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도요타가 작년에 중국 5개사와 연료전지 개발 합작사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요타가 65% 지분을 갖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교인 칭화(淸華)대, 그리고 베이징·제일·둥펑·광저우 등 중국 4개 자동차 기업이 각각 5~15% 지분을 출자했다. 합작회사가 개발한 수소차 시스템은 2022년부터 중국 트럭·버스에 탑재된다. 도요타로서는 기술을 움켜쥐고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전략을 버리고, 중국에 줄 것 주면서 최후의 승자를 노리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물론 하이브리드·수소차 기술을 중국에 일부 줘도 자사 핵심 역량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도요타는 2022년을 목표로 자사 개발 시스템을 기계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완전히 뜯어고치는 중이다. 어차피 미래에 살아남을 기술은 따로 개발 중이니, 지금은 중국의 시장을 얻기 위해 중국과 협력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일본車에 브랜드 밀리는 한국… 2배, 3배 더 쇄신해야”
코로나 사태에도 도요타가 중국에서 두 자릿수 성장한 것은 설계·부품 조달의 현지화로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높인 결과라는 분석이다. 계기는 2012년 중국에서 터진 일본차 불매운동이었다. 도요타는 중국에서 2011년까지 잘 성장하다 이듬해 큰 위기를 맞았다. 2012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외교 대립이 격화되면서 중국 판매가 일시적으로 반 토막 난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 급성장 중이던 현대·기아차는 일본차 판매 감소분까지 빼앗아 승승장구했다. 중국 판매는 2011년 117만2000대에서 2012년 133만7000대로 급증했다. 반면 위기에 빠진 일본차들은 경쟁력 쇄신에 돌입했다. 최신 차량을 중국인 입맛에 맞게 개량해 이전보다 낮은 값에 내놓기 시작했고, 도요타는 다음 해인 2013년 곧바로 반등에 성공했다. 2012년 일본차 불매운동이 결국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반면 2017년 들어 일본차와 현대·기아차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사드 사태로 중국 내 현대차 판매가 급감한 반면, 도요타·닛산·혼다·마쓰다는 모두 중국 판매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8년 1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한·중 정치관계가 악화하면서 현대차의 중국 판매 급감분을 흡수한 것이 일본차 약진의 요인 중 하나였다”고 썼다.
현대·기아차는 사드 사태로 판매가 꺾인 이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연 250만대까지 생산 능력을 키웠지만 작년 중국 판매는 전년보다 27% 감소한 66만5000대에 그쳤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기아차가 중·일 외교 갈등에 따른 판매 감소 이후 일본차의 경쟁력 쇄신 과정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며 “브랜드가 열세인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차 기업보다 2배, 3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