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부 해안에는 요즘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다에 모래주머니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남호주 주(州)정부의 경제개발기관인 남호주연구개발기관(SADRI) 소속 과학자들이다. 언뜻 폐기물 투기(投棄)의 현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이들이 던지는 생분해성 삼베(burlap) 자루엔 모래와 함께 해초(海草) 묘목이 담겼다. 해초 등이 번성하는 염습지(鹽濕地)와 갯벌, 맹그로브(mangrove) 등 연안 해양 생태계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같은 면적의 산림(山林)보다 최대 10배 높기 때문이다. 남호주 정부는 수년 내 축구장 13개 크기인 약 10㏊(약 10만㎡) 규모의 해초 군락지를 복원하겠다는 목표 아래 지난달에만 약 5만개의 해초 주머니를 근해에 뿌렸다.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동부 비스케인 만(灣)에 있는 맹그로브 숲(왼쪽). 블루 카본의 대표주자인 맹그로브숲의 탄소 흡수량은 같은 면적의 산림 대비 최대 10배 이상 많아 지구온난화의 새로운 대응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셔터스톡·남호주 주정

최근 연안 해양 생태계를 이용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는 시도가 확산하고 있다. 푸른(blue) 바다가 탄소를 흡수한다고 해서 ‘블루 카본(blue carbon)’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전 세계적 기후변화가 현실화하면서 더 급진적으로 온실가스 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블루 카본이 그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안 해안 생태계가 대기 중 탄소 제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학계와 정책 당국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호주·콜롬비아·미국 등지에서 연안 해안 생태계의 보전과 복원이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호주 주(州)정부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많은 해초 군락(群落)을 복원하기 위해 호주 남부 해안의 모래 바닥에 해초 묘목이 들어간 자루를 뿌려두었다. /셔터스톡·남호주 주정부

◇면적당 탄소 흡수량 산림의 10배

블루 카본이란 표현은 2009년 UN(국제연합)과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함께 펴낸 ‘해양의 탄소 흡수에 대한 종합평가보고서’에서 처음 나왔다. 뒤이어 2019년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블루 카본을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공식 인정했고, 현재 미국과 호주 등 28국이 연안 생태계를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미 아마존의 열대우림, 시베리아 침엽수림 등 기존 산림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는 ‘그린 카본(Green Carbon)’이라고 한다.

블루 카본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린 카본보다 우수하다. UNEP(유엔환경계획) 조사에 따르면 블루 카본을 만드는 연안 지역의 규모는 전체 해저 면적의 0.5% 수준이나, 탄소 저장량은 바다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지구상 존재하는 탄소의 55%가 바다에 저장돼 있다는 걸 감안하면, 탄소 포집(捕執)의 효율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토 면적의 63.7%(6만3690㎢)에 달하는 산림이 흡수하는 탄소량은 4700만t, 총면적 2495㎢로 넓이가 산림의 25분의 1(3.9%)에 불과한 갯벌이 흡수하는 탄소량은 1750만t에 달한다. 같은 면적 대비 거의 9.5배에 달하는 탄소 흡수 효율을 보이는 셈이다.

이산화탄소의 흡수 속도도 빠르다. UN과 IUCN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양 생태계의 탄소 흡수 속도는 육지 생태계보다 최대 50% 빠르다. 저장 공간도 큰 차이를 만든다. 나무나 해초 모두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한다. 하지만 산림 생태계는 가지나 뿌리, 잎 같은 작은 유기물에 탄소를 저장하고, 연안 생태계는 물속 토양에 대부분을 저장한다. 해저 퇴적층에 탄소가 쌓이므로 더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 해양에는 유기물을 분해해 탄소 배출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도 적다. 물속에선 상당수 박테리아의 호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토양으로 흡수된 탄소는 수천 년간 저장된다. 나무의 탄소 저장 기간은 수령에 따라 길어야 수백 년에 불과한 것과 대조된다.

◇블루 카본 사업 나선 기업들

블루 카본을 만드는 연안 해양 생태계는 간척 사업, 폐수 배출, 양식업,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CI(국제보호협회)와 유네스코, IUCN 등 환경 관련 국제기구들이 모여 만든 ‘블루 카본 이니셔티브’ 조사에 따르면 갯벌, 해초 군락지, 맹그로브 등 연안 해양 생태계는 매년 1~2%씩 손실되고 있다. IPCC는 이로 인해 매년 최대 54억t의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배출되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하고 있다는 발표도 했다. 이는 주요 20국(G20) 온실가스 배출 총량(553억t·2018년 기준)의 약 10% 수준이다.

해초 군락지 같은 연안 생태계는 한번 파괴되면 파도와 해류가 해저를 침식하면서 재생이 힘들다. 인위적 복원 노력 없이는 잘 회복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블루 카본을 사업화해 관련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핵심은 탄소 배출권 시장 진입이다. 블루 카본을 거래할 수 있어야 투자금이 모이고 기업들이 복원에 나설 유인이 생긴다.

올해부터 이러한 시도가 가시화하고 있다. 탄소 배출권 인증·발행 기관인 베라(VERRA)는 지난 10일 미국 애플과 국제보호협회, 콜롬비아 지방정부가 지난 3년간 협력해 준비한 블루 카본 보존 프로젝트의 탄소 배출권 발행을 승인했다. 콜롬비아 연안에 있는 2만7000에이커(약 3305만평) 규모의 맹그로브에서 저장된 탄소를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세계 최초로 승인된 블루 카본 탄소 배출권이다. 명품 브랜드 구찌,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 P&G도 최근 1년 새 각각 온두라스와 필리핀 소재 맹그로브 숲에 블루 카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제니퍼 하워드 국제보호협회 이사는 “20개 이상의 블루 카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블루 카본이 지구 환경에 기여하는 것을 넘어 돈을 벌 기회가 되고 있다”고 했다.


:맹그로브 (Mangrove)

열대·아열대 지역의 해안 갯벌이나 강 하구 등 바닷물이 밀려드는 진흙땅에 자라는 수목 무리. 홍수림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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