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오스트리아 과학자들이 소의 위에 사는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도축장에서 나온 소의 위에서 위액을 받아 실험했더니 음료수병에 쓰이는 페트(PET) 같은 플라스틱이 분해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소의 위에 사는 미생물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를 찾아내면 플라스틱 재활용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일 자연의 힘으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해결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극한 환경에서 플라스틱을 먹이로 삼은 미생물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미생물 효소로 플라스틱의 사슬 구조를 끊어내면 다시 플라스틱 제조 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있다고 본다. 플라스틱의 완전 재활용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페트병 분해 미생물, 재활용 공장에서 찾아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의 단 3%가 바다로 흘러가지만 그 양이 800만t에 이른다. 물개는 플라스틱 고리에 목이 졸려 죽고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거북의 배 안에는 비닐봉지가 가득했다.
재활용 연구의 주요 공략 대상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페트다. 페트병은 2018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29%만 재활용된다. 옷에 쓰인 페트는 재활용이 더 어렵다. 옷에는 다른 물질도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일본 과학자들은 페트병 재활용 공장에서 발견한 ‘이디오넬라’라는 미생물에서 플라스틱 분해 효소 두 종류를 발견했다. 2년 뒤 영국 포츠머스대의 존 맥기헌 교수는 일본 과학자들이 발견한 미생물 효소를 개량해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20% 이상 증가시켰다. 연구진은 효소가 페트와 더 잘 결합하도록 변형해 분해 속도를 높였다.
지난해 4월 프랑스 카르비오사(社)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퇴비 더미에서 찾은 미생물의 효소로 페트병의 90%를 10시간에 분해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자연 상태의 미생물 효소를 개량해 플라스틱에 더 단단히 결합하도록 했다. 카르비오는 2024년까지 프랑스에 플라스틱 분해 공장을 세워 재활용 플라스틱 원료를 연간 4만t씩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시험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맥기헌 교수는 지난해 9월 처음 일본에서 발견된 페트 분해 효소 두 가지를 연결한 수퍼 효소를 발표했다. 효소의 플라스틱 분해 속도가 이전보다 6배나 빨라졌다. 과학자들은 세제로 옷의 오물을 제거하듯 미생물 효소를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 뿌려 페트 원료만 뽑아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
◇국내에선 해양 오염 해결할 플랑크톤 개발
과학자들은 자연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들이 더 있다고 본다. 플라스틱 분해 효소는 구조가 원래 미생물이 식물을 분해할 때 쓰는 효소와 흡사하다. 사과 껍질 같은 식물 성분도 플라스틱과 같은 고분자 구조를 갖고 있다.
유럽·중국 컨소시엄은 퇴비 더미에 사는 미생물에서 플라스틱 분해 효소를 찾고 있다. 맥기헌 교수는 인도네시아 습지 식물인 맹그로브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거친 맹그로브 잎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수십 년간 맹그로브 뿌리에 걸린 플라스틱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찾은 미생물은 탄소와 산소 원자 결합으로 이뤄진 페트만 분해할 수 있다. 그보다 훨씬 생산량이 많은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은 탄소 원자끼리 결합돼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곤충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다. 최근 나방 애벌레가 폴리에틸렌 성분의 비닐봉지를 분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플라스틱 분해 플랑크톤을 개발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김희식 박사 연구진은 일본에서 발견된 이디오넬라균의 플라스틱 분해 효소 유전자를 식물성 플랑크톤에 도입했다. 지난해 연구진은 플랑크톤이 페트병을 분해하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은 다양한 플랑크톤에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부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희식 박사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라며 “상용화 전에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유전자 변형 생물 중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사회적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