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평균기온은 19세기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2도가 올랐다. 급격한 온도 상승에 폭염 같은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온혈동물은 체온을 더 조절할 수 있도록 부리나 귀 등 몸의 일부를 더 크게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변온동물은 서식지를 이동했고 빙하가 녹아 고립된 북극곰들은 근친교배로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했다. 기후변화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열 발산하는 새 부리 10% 커져
호주 디킨대 사라 라이딩 박사 연구진은 “다양한 종의 생김새 변화를 연구한 결과 기후변화가 원인임을 발견했다”고 국제 학술지 ‘생태와 진화 동향’에 지난 7일 밝혔다.
조류는 털이 덮이지 않은 부리나 다리로, 포유류는 귀·꼬리 같은 몸의 일부를 이용해 체온을 낮춘다. 더운 지방에 사는 동물이 부리나 귀가 큰 경우가 있는데, 코끼리가 대표적인 예다.
연구진은 호주앵무새부터 중국 박쥐, 토끼에 이르는 다양한 종을 연구했다. 그 결과 특히 조류에서 변형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앵무새들은 부리 크기가 1871년 이래 4~10% 커졌다. 또 숲쥐의 꼬리가 길어지고, 따뜻한 지방에 사는 박쥐의 날개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동물 생김새 변화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다양한 지역과 조사한 종들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라이딩 박사는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진화한다는 의미”라며 “지금은 형태 변화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기온 상승이 계속되면 더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자리는 시원한 북쪽으로 이동
체온을 조절 못하는 변온동물은 서식지를 이동했다. 영국잠자리협회는 7일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잠자리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97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수집된 46종 1700만 마리의 잠자리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종이 새로 관측됐고, 5종은 사라졌다. 종의 40%가 새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잠자리협회는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했다.
그중 황제잠자리와 검은꼬리 스키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개체 수가 증가했다. 두점배좀잠자리 등 몇몇 종은 2010년 영국해협을 건너 알을 낳은 것이 확인됐다. 다만 데이브 스몰셔 잠자리생태보고서 공동 편집자는 “수질 개선과 습지 서식지 복원도 개체 수 증가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유럽 대륙에 살던 종들이 북쪽 영국에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성체 상태로 겨울을 나는 겨울실잠자리가 벌써 웨일스 남부에서 발견됐다.
◇북극곰 유전적 다양성 10% 감소
서식지를 이동하지 못한 동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노르웨이 생물경제연구소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북극곰의 서식지를 축소하고 있으며, 북극곰은 생존을 위해 근친 교배를 하게 됐다”고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회보B’에 8일 밝혔다.
연구진은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 4개 지역에 사는 622마리의 북극곰 DNA 샘플을 분석했다. 북극 지방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해빙이 떨어져 나가 북극곰을 점점 고립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부터 2016년까지 북극곰의 유전적 다양성이 10% 감소했다. 현재의 기후변화 속도라면 앞으로 더 많은 얼음이 녹아 북극곰이 고립될 것이라고 연구진은 예측했다.
일부 북극곰들은 먹이를 찾아 남쪽 알래스카까지 내려온다. 북극곰이 내륙의 회색곰과 짝짓기를 하면서 ‘피즐리’라는 새로운 종이 늘고 있다. 미국 밴더빌트대 드산티스 교수는 “피즐리가 기후변화에 더 잘 적응하고 따뜻한 기온에서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