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훔쳐본 40대 남편 A씨에게 재판부가 선고 유예를 결정했다. A씨가 집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해 아내의 대화를 엿들은 부분에서도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10일 대구지법 형사 12부(재판장 이규철)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정보통신망 침해 등)·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47)씨에게 각각 선고 유예와 무죄를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9월 A씨의 아내인 B(46)씨는 술에 취해 늦게 귀가했다. 이 모습을 본 A씨는 아내의 친구 C씨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B씨가 잠든 사이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엿봤다. B씨가 설정한 카카오톡 비밀번호가 C씨의 전화번호 뒷자리임을 깨달았을 때 A씨는 두 사람의 불륜을 직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기록에 따르면 C씨는 B씨와 함께 “추석에 시댁에 있을텐데 나한테 카톡해도 되느냐” “추석 당일에 함께 만나자” “늙으면 요양원에 함께 가자”는 문자를 나눴다.
이후 2019년 11월 위장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A씨는 이듬해 건강검진에서 위염·식도염 진단을 받는다. A씨는 당시 자기 칫솔에 락스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주로 쓰는 안방 화장실에서 못 보던 곰팡이 제거용 락스 통이 있는걸 발견했다.
이에 A씨는 자기만이 알 수 있는 방향으로 칫솔 등 세면도구의 방향을 맞춰놓고 출근했다. A씨가 퇴근 후 확인한 결과, 세면도구의 방향과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아내의 범행을 의심한 A씨는 지난해 2월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했다. 결과는 A씨의 예상대로였다. 녹음기와 카메라에는 무언가를 뿌리는 소리와 함께 “안 죽노. 안 죽나 씨” “락스물에 진짜 쳐 담그고 싶다” “오늘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 “몇 달을 지켜봐야되지? 안 뒤지나 진짜, XX” 라고 하는 아내의 혼잣말이 담겨졌다.
2월부터 4월까지 녹음기와 카메라에는 총 25회에 걸쳐 B씨가 A씨의 칫솔에 락스를 뿌리는 모습과 “죽어, 죽어” 등 혼잣말이 담겼다. 이중 검찰은 15회분의 기록을 범죄 사실로 판단해 B씨를 기소했다.
재판부는 “(아내의 대화를 훔쳐 본)정보통신망법 위반죄는 우발적이며 경위에 참작할 바가 있고, 범행 이후 5년이 넘도록 아내 B씨가 문제 삼지 않고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면서 선고 유예를 결정했다.
A씨가 녹음기와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부분에 대해선 “범행이 A씨가 출근한 사이에 몰래 이뤄졌고, B씨의 범행을 파악하고 A씨가 자기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B씨의 언동을 녹음·녹화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 외에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적절한 수단을 찾기 어렵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이보다 앞서 A씨는 지난 2020년 4월 대구가정법원에 피해자보호명령을 청구했고 법원은 B씨에게 즉시 퇴거 조치와 함께 A씨의 주거 및 직장에서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임시보호명령을 내렸다.
이와 별도로 A씨는 같은 달 대구지검에 B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B씨가 A씨에게 상해를 가하려고 하다 미수에 그쳤다고 판단하고 B씨를 특수상해미수혐의로 기소해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