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40대 직장인 배소영씨는 지난 13일 2시간 동안 만사를 제쳐두고 휴대전화 화면을 켜놓고 연신 ‘새로고침’을 했다. 수퍼스타의 콘서트 예약 때나 했던 모습이지만, 배씨가 원하는 건 잔여백신이었다. 결국 잔여백신 예약에 성공한 배씨는 “예약 가능한 잔여백신이 올라오면 1초도 걸리지 않아 마감되기 때문에, 예약에 성공하고도 운이 좋았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맞으려는 시민들 사이에서 잔여백신 예약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국내 백신 1차 접종자가 13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주변에 백신을 접종한 이들이 늘고 정부가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혜택을 주겠다는 발표를 하며 잔여백신 예약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백신 접종 과정에서 예약은 됐지만 실제 접종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른바 ‘노쇼 백신’을 잔여백신으로 분류해 네이버와 카카오톡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잔여백신 접종은 예약 선착순이다. 잔여백신이 떴다는 알림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휴대전화 화면을 켜두고 알림이 뜨기 전 낚아채야만 겨우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서울 구로구의 직장인 김모(48)씨는 업무 중에도 잔여백신 예약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했다. 김씨는 “지인들과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언제 어느 병원에서 주로 잔여백신이 뜨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해가며 예약에 몰두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의 직장인 송종섭(54)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주 전부터 잔여백신 접종을 위해 회사 주변 병원 5곳으로부터 알림 문자를 받고는 있지만, 재빨리 들어가 예약하려고 해도 항상 마감된 이후다. 송씨는 “일하는 도중에 새로고침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한다는 의미)’만 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예약 가능하다는 알림을 받아도 기대가 안 된다”며 “어떻게든 백신을 빨리 맞고 싶지만 결국 나중에 접종 순서가 돼야 내 차례가 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잔여백신 예약을 두고 희비가 엇갈리며, 온라인에서는 예약 팁까지 공유되고 있다. ‘어른들이 찾을 일 없는 소아과에서 잔여백신 예약이 수월하다’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1시 반부터 2시까지가 골든타임이다’ 등이다. ‘백신 종류와 접종 장소를 고민하는 것도 사치다. 머리 비우고 그냥 클릭만 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잔여백신 예약 전쟁이 심화하면서 위탁접종을 맡은 개인병원들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병원 관계자는 “잔여백신만 올렸다하면 문의 전화에 전쟁통이 된다”며 “병원까지 찾아와 잔여백신을 맞겠다는 시민들이 있어 ‘내일 다시 올릴테니 그때 잘 보고 예약해달라’고 해서 돌려보낸다”고 했다. 인천 계양속편한내과 윤형선 원장은 “백신 접종을 위탁받은 개인병원들이 매일같이 잔여백신 민원만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백신 수량을 더욱 넉넉하게 확보하는 것만이 해답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