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아파트 계단을 따라 지하실로 내려가자 퀴퀴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며칠 새 내린 폭우로 바닥 곳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썩은 매트리스, 바퀴 달린 의자, 깨진 가스레인지가 뒤섞인 지하실의 벽엔 거미줄이 길게 늘어졌다. 물 웅덩이를 피해 쓰레기를 나르는 인부들은 ‘죽겠다’는 탄식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폐기물 처리 작업이 진행 중인 은마아파트 지하실. /강우량 기자

7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개 동 지하실 곳곳에 쌓여있던 쓰레기들을 버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1979년 준공 후 40여년 간 입주민들이 버리고 간 생활 폐기물이 이제서야 수거에 들어간 것이다. 인부들은 5~10명씩 조를 짜 지하실의 쓰레기를 지상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다시 분류해 1t 트럭에 싣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외국인 근로자 A씨는 “판자부터 곡괭이, 송곳, 심지어는 정체 모를 마네킹까지 나온다”면서 “지하실에서 일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고 했다.

4424가구 대단지 은마아파트는 지난달 29일부터 지하실 폐기물 수거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40여년간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양은 2300t 정도로 추정된다. 대부분 기존 거주자가 이사하면서 버린 쓰레기다. 은마아파트에 20여년 간 살았다는 주민 박모(64)씨는 “과거에는 폐기물 수거 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경비실을 통해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했는데, 당시 이사 나가는 주민과 경비원 일부가 지하실에 쓰레기를 쌓아둔 것 같다”면서 “쓰레기가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지는 이번에 알았다”고 했다.

은마아파트는 이 ‘쓰레기 산’을 놓고 오랜 갈등을 겪었다. 당장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입장과 과거 주민들이 버리고 간 폐기물의 처리 비용을 왜 지금 거주자가 내야 하느냐는 의견이 충돌했다. 또 입주자의 65%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처리 비용을 부담하기 꺼리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일부 입주민들이 ‘벌레가 들끓는다’며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민원을 구청에 냈지만, 구는 아파트 내에서 발생한 생활폐기물인 만큼 아파트가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여름마다 심해지는 악취와 파리 등에 불편을 호소하는 입주민이 늘면서 결국 동대표 과반수 동의로 폐기물 처리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달 29일부터 지금까지 7개 동을 청소했고, 앞으로 한 달 이내에 남은 24개동 쓰레기도 모두 처리하는 게 목표다. 폐기물 처리 비용 3억5000만원은 우선 아파트 자체 잡수입(재활용품 매각 등 아파트 관리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쓰레기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주민들은 코를 막았다. 폐기 작업이 진행 중인 단지의 지상 주차장에는 약 30t 분량의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트럭이 쓰레기 나오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임시로 쌓아둔 것이라고 했다. 판자와 고철, 벽돌 등이 뒤섞인 쓰레기 더미 위로 파리 무리가 보였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잠시 쉬고 있던 한 작업자는 “한 시간 동안 1t 트럭이 2~3번씩 빠진다”면서 “한 동마다 50t 정도의 쓰레기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일부 쓰레기는 지상 주차장에 임시 보관돼 있다. 지나가던 주민들은 코를 막았다. /유종헌 기자

쓰레기 처리 작업은 시작됐지만, 아직 갈등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일부 입주민들은 “동대표들이 일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마아파트는 지난 6월부터 폐기 비용 처리에 대한 입주민 동의를 받고 있는데, 아직 주민의 35% 정도만 투표에 참여했다. 이 아파트에서 1980년부터 살았다는 주민 최모(80)씨는 “관리사무소에서 쓰레기 치우자길래 얼떨결에 동의하긴 했는데, 가구당 얼마를 내야 하는지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한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어떤 업체를 선정할지를 놓고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관리사무소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은마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5월 30일 입주자대표회의에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안건을 상정했고, 동대표들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면서 “일부 불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대다수 주민들에게서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인부들이 은마아파트 지하실 폐기물을 치우는 모습. /강우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