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중구의 한 코로나 선별진료소 창고. 어른 몸통 크기의 흰색 플라스틱 용기 30여개가 어른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용기 안엔 쓰다 버린 면봉, 비닐장갑, 방호복 등 코로나 검사 과정에서 나온 일주일치 폐기물들이 꽉 차 있었다. 이 선별진료소 관계자는 “매일 쏟아지는 코로나 폐기물을 그날 처리하지 않고 일주일간 창고에 쌓아놨다가 한 번에 수거해가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환경부 지침상 코로나 관련 의료 폐기물은 당일 수거해 당일 소각해야 한다. 폐기물에 의한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코로나 장기화로 폭증하는 폐기물을 제때 수거조차 못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자료=보건복지부, 환경부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발생한 코로나 의료 폐기물은 1만3500t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발생한 의료폐기물(257t)의 약 52배다. 코로나 폐기물량은 점차 늘어 작년 12월부터 7개월간 매월 1000t 넘는 폐기물이 발생했다.

이에 반해 의료폐기물 소각업체는 전국에 13곳밖에 없다. 이마저도 경북, 전남, 충남 등 지방에 몰려있고 코로나 확진자가 많은 수도권엔 3곳뿐이다. 또 코로나 폐기물 대부분은 수거 업체들이 방호복을 입고 보호장구를 갖춘 상태에서 수거해야 하는 등 수거·소각 절차가 까다로운 ‘격리 의료폐기물’이어서 일반적인 의료폐기물보다 처리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다 보니 쏟아지는 코로나 폐기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두거나 방치하는 ‘소화 불량’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오후 본지가 찾은 대전시의 한 선별진료소 건물의 한쪽에도 나흘간 나온 코로나 폐기물 박스 40개가 쌓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폐기물이 당일 소각되지 않고 장기간 방치될 경우 추가 감염 위험이 있다고 했다. 폐기물 용기가 파손돼 코로나 확진자의 타액 등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이로 인한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폐기물의 장기 방치를 막기 위해 수거 업체가 ‘원정 소각’을 가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수거 업체는 “서울에서 나온 코로나 폐기물을 싣고 전남 장흥 등 몇몇 지역까지 왕복 10시간 이상 오가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직원들도 코로나 폐기물을 싣고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수거 업체 직원은 “소각장이 적어 광주, 경주, 경산 소각장까지 가봤다”고 말했다. 대구지방환경청 관계자는 “관내 소각장에서 처리되는 의료폐기물의 절반은 수도권 발생 폐기물”이라고 했다.

가까운 관내 소각장에 가더라도 폐기물 차량이 몰려 반나절 이상 대기하기도 한다. 충남의 한 수거 업체 관계자는 “오전 9시에 소각장에 도착해서 오후 3시까지 차례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대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 폐기물 수거 주문을 아예 받지 않는 수거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본지가 지난 10일 의료 폐기물 수거 업체 10곳에 전화해 보니, 이 중 6곳은 코로나 의료폐기물 수거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급증하는 코로나 폐기물을 당일 수거, 당일 소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예산 지원에 나서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