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과 보성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전남 구례읍 양정마을 마을 40가구 중 18가구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 넘게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7~8일 하루 평균 3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구례읍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면서 집이 부서진 가구들이다. 당시 폭우로 구례읍에서는 총 1807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고, 가축 1만5000여 마리가 죽거나 물에 떠내려갔다. 지난달 11일 방문한 양정마을에서는 여전히 부서진 집기들을 햇빛에 늘어놓고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양정마을 이장 전용주(56)씨는 “여름 물난리에 소 14마리를 잃었는데 특별재난지원금만 80만원 받았다”며 “원인 조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어 농가 중에는 수확을 포기하고 조사만 기다리고 있는 집도 많다”고 했다.

전북 남원시 금곡교 아래 나뭇가지와 쓰레기, 떨어져 나온 제방 부속 등 지난 8월 홍수의 잔재들이 방치돼 있다. 지난달 11일 현장 취재 당시 찍은 사진이다. 홍수 당시 금곡교 아래부터 인근의 제방이 6m가량 붕괴돼 일대 농지가 물에 잠겼다. /김효인 기자

정부가 지난 26일 ‘풍수해 대응 혁신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양정마을을 포함해 지난여름 수해를 입은 섬진강댐, 합천댐(낙동강), 용담댐과 대청댐(금강) 하류 피해 지역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홍수 피해 원인 조사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는 구체적인 수해 지역 보상 방안 등이 담기지 않았다. 앞으로 진행될 홍수 원인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져야 한다.

◇수해 원인 조사 제자리걸음

홍수 원인 조사위원회는 지난달 19일에서야 꾸려졌다. 지난 9월 환경부 주도로 출범한 ‘댐 관리 조사위원회’를 지방자치단체 추천 전문가와 주민 대표 등이 함께 참여하는 ‘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협의회’로 확대해 개편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전문 기관에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태로 12월 중순쯤 조사가 시작할 예정”이라며 “용역 기간이 6개월이어서 내년 중순은 돼야 보상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홍수 발생 당시에는 폭우에 갑작스럽게 섬진강댐 등의 수문을 연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해 발생 지역의 하천 관리와 제방 정비 등 전반적인 물관리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초 한국수자원학회 홍수 심포지엄에서 “남원과 구례 사례를 보면 일부 제방의 높이가 인근 제방보다 낮게 만들어져 있어 홍수 발생 당시 수위가 공식적인 제방 높이보다 낮았는데도 제방을 넘었다”며 “제방 높이 여유가 부족한 지역이 상당수인 만큼 이에 대한 조사 및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가 하천 49% 제방 보강·신설 필요

올해 국토부가 발간한 한국하천일람에 따르면, 국내 하천 3만4778㎞ 중 제방 정비가 완료된 구간은 51%(1만7800㎞)에 불과하다. 나머지 구간은 제방이 있지만 보강이 필요(24.6%)하거나 아예 제방이 없어 신설(24.2%) 해야 한다.

권역별로 보면 전체 하천 중 올해 홍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섬진강 권역의 경우 제방 정비 완료율이 37%에 그쳤다. 많은 비가 왔지만 큰 피해가 없었던 한강 권역의 경우 57%였다. 낙동강 권역(51%), 금강 권역(50%), 영산강 권역(47%) 등도 섬진강 권역보다 높다. 제방 정비가 시급하지만, 정부의 물관리 예산 중 하천관리 예산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줄어들고 있다. 2012년 2조8000억원 규모에서 올해 1조1000억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댐·하천 등 치수 관리를 위한 정부 예산은 환경부, 국토부, 행안부, 산업부, 농식품부 등에 걸쳐 있다”며 “지방하천·소하천 정비 예산은 지난해부터 지자체로 이양해 줄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컨트롤타워 필요” 물관리 일원화 움직임

정부는 지난 2018년 수량과 수질 관리 업무를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일원화했지만, 하천 관리는 여전히 국토교통부에 남아 있다. 이러다 보니 종합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여름 홍수 이후 하천 관리도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천 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수해 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