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 폭우'가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전남에서 이틀 동안 최고 500㎜ 넘는 ‘물폭탄’이 쏟아져 2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긴급 대피하는 등 이재민이 속출했다.
6일 오전 6시 5분쯤 전남 광양시 진상면 비평리 탄치마을 뒤편 야산에서 1.5m 높이 석축 일부가 집중 호우로 붕괴했다. 돌로 쌓은 옹벽과 석축을 지지하던 토사 더미, 밤나무 등이 20여m 아래로 흘러내려 가옥 2채와 창고 3채를 덮쳐 이모(여·82)씨가 숨졌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서는 이날 오전 3시 40분쯤 계곡물이 범람해 침수된 주택에서 일가족 5명이 고립돼 60대 여성 1명이 사망했다. 전남 곳곳에서 주택 130동이 침수됐고 농경지 침수도 잇따랐다. 볏논 2만1433㏊가 물에 잠겼다. 파도가 높게 일면서 여객선은 전체 53항로 86척 중 21항로 33척이 통제됐다. 전날부터 이날 오후 4시까지 전남 지역 누적 강수량은 해남 현산 526㎜, 장흥 관산 460㎜, 고흥 도양 416.5㎜ 등이다. 이날 하루에만 해남에 394.4㎜, 진도에 389.1㎜, 강진에 363.9㎜의 비가 내렸다.
이번 폭우는 대비하기 어려운 늦은 밤과 새벽에 집중되면서 피해를 키웠다. 전남 장흥 관산읍에는 6일 0시부터 3시까지 170㎜ 장맛비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불과 3시간 사이 이날 오후 5시까지 내린 강수량의 절반 넘는 비가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 지난 3일부터 이날까지 전국에서 비가 가장 많이 쏟아진 시간대는 대부분 새벽 0~4시로 한밤중이었다. 기상청은 6일 밤부터 7일 새벽 사이에도 남부 지방 등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최대 50㎜ 이상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올 장마철에는 낮에 빗줄기가 잦아들었다가 밤늦게부터 새벽에 장대비를 퍼붓는 이른바 ‘야행성 폭우’가 잇따르고 있다. 밤새 하천이나 계곡이 순식간에 불어나 범람할 가능성이 크고, 침수 등 각종 안전 사고의 위험이 더 높다. 이번 야행성 장마는 밤 시간대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원활하게 공급되면서 비구름대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야행성 폭우의 가장 큰 원인은 ‘하층 제트’라는 바람 때문이다. 하층 제트는 1~3㎞ 낮은 상공에서 부는 초속 13m 이상 빠른 남서풍인데,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에서 형성돼 한반도로 올라온다. 바다의 따뜻한 수증기를 품고 북상하면서 장마 전선을 만나면 구름대를 더 두껍고 크게 만든다. 상대적으로 차고 건조한 저기압을 만나면 급격한 대류 현상을 일으켜 게릴라성 소나기를 만들기도 한다.
하층 제트는 밤에 더 강하게 분다. 지표면이 뜨겁게 달궈질 때 생기는 대기 난류(亂流)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층 제트는 낮에 이렇게 위아래로 흐르는 기류와 부딪혀 풍속이 느려진다. 하지만 해가 진 뒤 지구가 식는 밤엔 방해물이 없어서 맘껏 불면서 따뜻한 수증기를 끌어와 장마전선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야행성 장마는 지난 2017년에도 수도권에 밤사이 시간당 30㎜ 가까운 폭우를 뿌린 바 있다. 2019년에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더 두드러지는 것은 장마전선이 북쪽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만나면서 발달하는 작은 저기압 소용돌이들이 동반되면서다.
8일과 9일에는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장맛비가 내릴 전망이다. 동서로 길고 남북으로 짧은 장마전선이 주말인 10~11일에도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을 오르내리면서 곳곳에 비를 뿌린다고 기상청은 예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