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사거리. 햇빛 가림막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 선 시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광화문 일대에서 일한다는 회사원 김모(29)씨는 “신발을 신어도 바닥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질 정도”라며 “땡볕 아래 서있기만 해도 찜질방에 들어간 것같이 숨이 턱 막힌다”고 했다.
최근 폭염은 중국 남부를 향하는 태풍의 열기, 동해상에 위치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흐름을 따라 불어온 더운 바람의 영향으로 수도권과 서쪽 내륙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울은 ‘열섬 현상’ 탓에 기온이 더 치솟았다. 이날 서울의 공식 낮 최고기온은 35.8도로 전날(35.9도)보다 0.1도 낮지만, 실제 직사광선과 아스팔트의 열기를 그대로 받는 길거리의 온도는 이보다 5~6도 더 높았다.
본지 취재진이 시중에서 구입한 온도계를 들고 강남구 강남역과 종로구 광화문광장 등 서울 도심에 나가 직접 길거리 기온을 재봤다. 기상청의 기온 측정 기준(지표면에서 1.5m 높이)에 최대한 맞춰 측정했다.
◇도심 기온 40도 넘어… 50㎝ 아래선 최대 2도↑
이날 오후 4시쯤 강남역 인근 보도에서는 온도계 수은주가 41도까지 치솟았다. 비슷한 시각 광화문광장의 디지털 온도계엔 42.7도가 찍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공식 종관기상관측장비는 잔디밭 등 자연적인 바닥 위에 직사광선을 차단한 조건에서 기온을 측정한다. 길거리는 뙤약볕과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노출돼 더 높은 값이 나오는 것이다.
인근 그늘로 피해 측정해 보니 이보다 4~5도 정도 낮은 38~38.2도가 나왔다. 보통 양산으로 직사광선을 가리면 체감온도를 최대 10도까지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온도계를 지면에서 약 1m 높이인 허리춤으로 내려 측정해봤다. 온도계를 확인하려고 허리를 숙였더니 얼굴에 보도블록의 뜨거운 기운이 훅 느껴졌다. 같은 자리에서 높이만 50cm 정도 낮췄는데 0.5~2도가량 높은 43~43.3도가 찍혔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의 경우 도심을 걸을 때 주변 온도가 높아 열기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린아이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워 폭염에 취약하다”며 “한낮에는 가급적 밖에 나가지 않도록 하고, 불가피하게 외출할 경우 아동이 온열 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주고 지쳐 보이면 시원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침 6시부터 체감온도 30도… 하루 종일 끓는다
불볕더위는 이번 주말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밤사이 오른 습도와 강한 햇볕 때문에 아침 6~7시부터 체감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등 하루 종일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해가 진 뒤 수증기 유입이 더욱 원활해져 이른 새벽에는 습도가 70~75%까지 치솟는다”면서 “아침 체감 기온이 30도 안팎까지 올라가는 건 이 때문”이라고 했다.
기상청은 “주말까지 전국이 대체로 맑고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으로 오르는 무더위가 계속되겠다”고 했다. 특히 수도권과 영서 지방은 24일 낮 기온이 38도 이상 오르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서울은 올 들어 가장 높은 37도, 광주 36도, 대구 33도 등으로 예보됐다. 일요일인 25일은 28~36도로 전날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낮겠다.
저녁까지 35도 안팎의 고온이 지속되고 해가 진 뒤에는 열대야 현상(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 지난 22일 밤 기온이 27.2도 넘게 유지돼 올 들어 가장 더운 밤을 기록했다.
한낮 무더위와 열대야는 다음 주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중기(10일) 예보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전국의 낮 최고기온은 30~35도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태풍의 열기와 수증기가 가세하면서 불쾌지수와 체감온도가 더 오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