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고형연료제품(SRF·Solid Refuse Fuel) 열병합발전소가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공전하고 있다. SRF는 매립되는 폐플라스틱과 고무 등 가연성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연료 제품으로, 엄격한 유해물질 품질 검사를 거친다. 선진국에서도 활발하게 사용 중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내가 사는 곳에는 안 된다는 ‘님비’로 가동에 제동이 걸린 곳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출구’ 하나가 막혀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조례로 SRF 발전 막아
4일 환경부와 국회에 따르면, 지난 3~4년간 SRF 발전소 사업허가를 받은 60여 곳 중 전남 나주, 강원 원주, 경기 양주·동두천·여주, 전남 담양·무안 등 10여 곳에서 SRF 사업이 중단되거나 난항을 겪고 있다. 나주 SRF 발전소는 2017년 12월 준공됐지만 2년 5개월 만인 지난 5월에야 가동을 시작했다. 유해성에 대한 우려와 ‘광주광역시의 쓰레기를 반입한다’는 논란을 거치면서 지역민과 나주시가 반대를 벌였다. 지난 4월 광주지법이 나주시에 “사업 개시를 반려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해 SRF발전소 운영사인 지역난방공사 손을 들어준 이후 가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나주시가 “SRF야적장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주장해 발전소 측이 원료에 대한 별도 검사를 진행 중이다. 경북 김천에서는 SRF 발전소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하자 김천시가 사업장 증축을 불허하면서 업체 측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원주는 화훼 특화단지 열 공급용으로 SRF 발전 시설을 인허가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역민들의 반발에 지방의회가 앞장서 상위법 근거도 없이 조례로 SRF 발전시설을 제한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해 경기도 용인·평택·연천, 인천 서구 등이 폐기물관리법상 근거 없이 제한 조례 등을 만들었다가 환경부에 적발됐다.
SRF 발전에 반대하는 쪽은 “사업자가 환경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타 지역 쓰레기를 유입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SRF는 발열량·중금속 등 1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거치며 제조 업체와 사용 업체 모두 강도 높은 환경 규제를 받는다. 환경부 홍동곤 자원순환국장은 “SRF 사용 시설은 LNG발전소나 일반 폐기물 소각 시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오염 물질 배출 규제를 받는다”고 했다. 암모니아의 경우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는 허용치가 30ppm(1ppm은 100만분의 1)이지만, SRF시설은 15ppm으로 제한된다. 최근에 설치된 시설일수록 더 최신의 오염물질 저감 기술이 반영되고 에너지 회수 효율도 높은 편이다.
◇재활용 순환 고리 끊겨
문제는 플라스틱 배출이 늘어가는 가운데 SRF 발전소가 계속 좌초되면 재활용의 순환 고리 하나가 끊길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로 택배와 배달 음식이 늘면서 작년 1~8월 기준 폐플라스틱은 14.6%, 폐비닐은 11% 각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작년 한 해 SRF 제조량은 총 170만t으로 2019년 대비 7% 증가했다. 하지만 SRF 발전소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면서 전국 158개 시설에서의 SRF 사용량은 오히려 소폭 줄었다.
SRF 발전소가 계속 반대에 부닥칠 경우 약 2000도의 고온에서 연료를 처리해 대기 오염 물질을 최소화하는 시멘트 소성로(燒成爐)를 플라스틱 재활용 통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멘트 소성로는 독일 등 선진국이 폐플라스틱 에너지를 회수하면서 환경에 부담도 줄이는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SRF를 석탄발전소에 일부 투입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SRF는 대기 오염 물질은 적고 발열량은 높아서 석탄보다 더 나은 연료”라며 “화력 발전소에서 석탄의 3~5% 정도만 SRF로 쓰도록 허용해줘도 SRF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