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대강 보(洑) 해체 또는 개방을 위해 지금까지 1400억원 넘는 세금을 투입한 데 이어 9000억원이 더 드는 취수·양수장 이전 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하는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정부가 해체를 결정한 금강·영산강의 보뿐만 아니라 한강과 낙동강의 보까지 개방하기 위해 취수 시설을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4대강 보 개방 비용’이 모두 1조원을 넘게 된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에 낸 자료에 따르면 1조원 예산은 ①4대강 모니터링(477억원) ②보 개방에 따른 피해 보상 및 지하수 대책(869억원) ③4대강 조사·평가단 운영비(214억원) ④취·양수장 개선 사업 예산(9150억원) 등이다.
가장 규모가 큰 취·양수장 개선 비용 가운데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액은 800억원이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고도 4~5년간 8000억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 예산을 현 정부의 마지막 예산에 포함한 것은 임기 말 ‘보 개방 대못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원 의원은 “정부가 그동안 수질 악화와 농업용수 공급 불안 등 부작용을 무시하고 보 해체를 밀어붙인 데 이어, 보 개방에 드는 막대한 세금을 차기 정부에까지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취수 시설 개선이 ‘보 존폐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은 결국 보를 상시 개방하거나 철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4대강 보를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다음 달인 6월 1일부터 16개 보 가운데 낙동강·금강의 6곳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남한강 여주보와 낙동강 칠곡보를 제외한 14곳의 수문을 차례로 개방해왔다. 이 가운데 일부 보 수문은 상시 개방돼 물을 담는 보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보를 개방한 이후 ‘물 부족’ 사태가 문제가 됐다. 강 유역에는 수돗물이나 공장에서 쓰기 위해 강물을 끌어 정수장으로 보내는 취수장과, 농업용수를 퍼올리기 위한 양수장이 있다. 4대강의 취·양수장은 대부분 이명박 정부 때 10m 안팎 높이의 보를 쌓으면서 취·양수구 위치를 강 중앙에서 강변으로 옮겼다. 그런데 보를 열어 수위를 낮추면 물을 끌어올 수 없기 때문에 취·양수구 위치를 다시 강 중앙 등 수심이 깊은 곳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까지 쓰인 세금이 231억원이다.
4대강 조사·평가단은 2018년 11월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3개월 만인 이듬해 2월 금강 세종보와 영산강 죽산보를 완전 해체하라는 결론을 냈다. 금강의 또 다른 보인 공주보는 부분 해체,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2년 만인 올 1월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이 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5개 보의 기능을 폐기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금강은 312억원, 영산강은 145억원가량의 세금을 들여 대대적인 취·양수장 이전 공사에 돌입한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보 처리 방안이 결정되지 않은 낙동강과 한강에 대해서도 보 완전 개방에 대비한 취·양수장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올 2월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낙동강 수계 취수 시설 개선안’을 의결하고 지자체와 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등 운영 기관에 ‘강의 수위가 저하되는 비상시를 대비해 시설 개선 방안과 예산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영남 1300만명의 식수원이자 대규모 농경지와 산업단지의 농업·공업용수로 쓰이는 낙동강은 취·양수장도 많아 내년부터 7697억원의 거액이 들 전망이다.
이 가운데 녹조 현상 등 수질 문제가 전혀 없는 한강 보에 대해선 올 4월 환경부가 취·양수장 운영 기관에 보 개방에 대비한 개선 방안을 내라고 이미 지시했다. 한강 3개 보 취·양수장 개선에는 764억원의 세금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보 개방으로 하천의 수위가 낮아지면 주변 지하수 수위가 덩달아 낮아지면서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 또 세금이 들어간다. 관정(우물)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농사짓는 농가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보 개방에서 비롯된 이런 피해를 감당하느라 정부가 농민들에게 지급한 보상과, 새롭게 더 깊은 관정을 뚫는 사업에 드는 세금만 내년까지 869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8월 출범한 4대강 조사·평가단 인건비와 홍보에도 내년까지 214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평가단의 정식 명칭은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 처음부터 4대강 사업이 문제가 있다는 전제로 만들어져, 보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주변 생태계와 수질·수량 상태를 평가하는 작업을 해왔다.
정부의 보 개방 방침으로 민간 기업들의 피해도 생기고 있다. 정부는 민간이 운영하는 취·양수장은 세금을 들여 고쳐 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업무협약(MOU)을 맺는 방식으로 직접 이전하거나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보 개방에 기업들이 대야 하는 비용은 한강(6곳) 577억원, 낙동강(3곳) 94억원 등 672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취·양수장 개선 사업은 기후 위기나 수질오염 사고 등 재해에 대비한 것이지 보 해체와는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강의 상류에서 녹조가 생기거나 수질오염 물질이 유입되는 경우 보를 열어 물을 빨리 바다로 흘려보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기후 위기로 극한 가뭄이 발생하면 보를 닫아 놓더라도 수위가 낮아져 취수가 불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모두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막대한 세금을 넣겠다는 것이다.
심명필 인하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처럼 보의 관리 수위(보에 물이 가득 찬 경우의 수위)대로 운영하면 취수는 문제가 없다”며 “오염물질을 흘려보내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강 상류의 다목적 댐과 보를 연계해 운영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보 수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막대한 세금을 들여 시설 자체를 옮길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세금 퍼붓기’가 물을 담는 보의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한 밑작업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세금으로 세운 기반 시설을 정부가 활용하지 않고 오히려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