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친환경 에너지·산업 등을 규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30일 확정·공표했다. 그런데 ‘녹색 에너지’에 태양광·풍력 등과 함께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하면서도,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원전은 제외했다. 다음 달 중순 발표될 ‘EU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도 “원전은 친환경 에너지”라며 청정 에너지 기준(CES) 편입 의사를 내비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탈원전에 집착한 나머지 세계 주요국 흐름과 동떨어진 행보를 벌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이날 ‘녹색 부문’(탄소 중립과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녹색 활동) 64개, ‘전환 부문’(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 5개 등 총 69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유럽연합,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국제 기준과 비교해 검토했고, 산업계·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택소노미(taxonomy·분류체계)’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활동을 분류한 목록이다. 탄소 중립이 세계적 의제가 됨에 따라, 택소노미는 앞으로 ‘친환경 활동’에 집중될 민간·공공부문 투자를 결정하는데 방향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른바 녹색 사업·기술에 더 많은 자금이 흘러가게 하는 물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친환경 사업에 쓰일 목적으로 발행되는 ‘녹색 채권’의 경우 올 3분기까지 발행액이 14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작년 한 해보다 5배가량 늘었다. 환경부는 2023년 ‘녹색 채권 가이드라인’에도 K택소노미를 전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는 전력 생산과 관련된 ‘발전 분야’에 태양광·태양열·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메탄이 주성분인 LNG를 포함했다. 현 정부 들어 몸집이 커진 바이오매스도 녹색 에너지로 분류됐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발표한 ‘전원별 전주기(全週期) 온실가스 배출계수’에 따르면, 1kWh(킬로와트시)당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석탄이 820g으로 가장 많고, 바이오매스(230~740g), LNG(490g), 태양광(27~48g), 원전(12g) 순이다. 환경부는 LNG에 대해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4년까지 석탄 발전을 폐지하면서 이를 LNG 발전으로 대체하게 돼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공기업이 K택소노미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한 원전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 감축목표(NDC)’에 이어 이번에도 제외됐다. 원전은 풍력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적은 전원인데도 현 정부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천적으로 배제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원전 기술이 사장되고 원전 수출 경쟁력, 원전 산업 생태계 구축 등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와 원전 수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러시아의 경우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해 시설 확충 등에 필요한 투자 유치나 대출 등 금융 자본을 더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다른 나라들이 과학 기술로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로지 정치적·이념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면서 “탈원전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수송 분야’에선 전기차·수소차 부문이 포함됐고, 하이브리드 차량은 제외됐다. ‘산업 분야’에선 수소환원제철,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등 아직 개발 단계인 기술들이 주로 포함됐다. 환경부는 이번에 마련된 K택소노미를 1년간 시범 운영한 뒤 한 차례 개정하고, 다시 2~3년 운영한 뒤 재차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