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사 등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흉부외과 전문의 절반은 스스로 ‘번 아웃(burn out·극도의 피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수도권 외 지역에서 근무할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소위 ‘내외산소’ 의사를 늘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10년간 연간 400명씩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의료계와 충돌했는데, 흉부외과 등 필수 전공에 의사 인력이 부족한 과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14일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흉부외과학회)가 흉부외과 전문의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대형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흉부외과 전문의 327명 중 51.7%는 스스로 ‘번 아웃’ 상태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2.7시간 근무하고 1개월 평균 5.1일을 당직 밤샘 근무, 10.8일을 병원 외 야간 대기(온콜)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흉부외과학회는 “평균적인 흉부외과 전문의 1명이 한 달 중 16일을 야간 병원 외 대기 또는 병원 내 밤샘 근무로 보낸다”며 “이미 한계를 넘어선 살인적인 근무 요건을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설문은 흉부외과학회가 지난해 11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흉부외과 전문의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385명이 응답했고, 응답자의 85%(327명)가 상급종합병원 또는 종합병원에 근무했다.

흉부외과 의사들의 당직 근무는 서울에서 먼 병원일수록, 또 규모가 작은 병원일수록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중소 병원의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의 번 아웃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흉부외과 전문의의 1개월 평균 당직 근무 일수는 서울의 경우 3.5일, 경기·인천은 5.5일, 그 외 지역은 6.1일이었다. 또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4.9일, 그보다 작은 종합병원에서는 5.5일이었다.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에 흉부외과 교육을 받고 전문의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가 1명뿐이거나 아예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61%에 달했다. 학회 관계자는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으로 흉부외과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전공의가 없으니 전공의가 해야 할 일들도 전문의가 도맡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통상 의대 졸업 후 5년의 전공의 수련 기간을 거쳐 자격 시험에 합격해야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의사들은 학회 설문 답변에 “흉부외과 의사로서 어려운 환자를 보는 것 자체는 보람 있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지친다” “집에는 늦게 들어가고 남들보다 늘 바쁜 아빠, 엄마” “필요할 때는 흉부외과를 부르지만 결국 흉부외과는 소외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특정 전공 쏠림 현상과 지역별 편차 해결을 위한 의료수가(醫療酬價)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회 관계자는 “지역 필수 의료가 위기라는 정부의 문제의식에 동의하더라도, 무작정 의사 숫자를 늘리기에 앞서 우선 현재 필수 의료를 지탱하는 의사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앞장섰어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