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회사에 취직하고 독립을 했다. 독립하면서 맹세했다. 쓰레기와 청소를 귀찮아하지 않기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디든 누워서 뒹굴 수 있게 이틀에 한 번은 먼지를 없앴다. 뿌리는 락스를 사서 전(前) 세입자가 피운 담배의 흔적을 깡그리 없앴다. 집이 깨끗하니 나도 즐거웠다.
문제는 분리수거였다. 내가 사는 곳은 지하 1층에 내려가 분리수거를 하고, 1층 밖으로 나가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분류해 버려야 했다. 왔다 갔다 하기도 귀찮고 작은 거 하나 골라내야 하는 게 너무 신경 쓰였다. 페트병 하나를 버려도 비닐을 떼야 하고,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으면 통에 묻은 양념을 싹싹 닦아야 하고 단무지는 국물을 쭉 짜서 버려야 한다는 게 귀찮았다.
분리수거되는 쓰레기들은 원래 하나지만 플라스틱, 페트병, 비닐, 종이로 나뉘는 것 아닌가. 사람도 미래를 모르는데, 저들엔 앞날이 정해져 있었다. 쓰레기들은 곧 다른 것들로 재탄생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너무 오래되거나 더러운 것은 누군가 알아서 버려준다.
난 생각이 많은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쓸데없는 망상을 진지하게 했다.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대통령이 된다면?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면?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 밖에 잘 못 나가니까 먹을 거랑 마실 게 중요하겠지. 그러면 둘 다 있는 목욕탕으로 피하자 같은 망상인데, 그럴 때면 꿈에서도 같은 내용이 펼쳐졌다. 얼마 전에는 좀비 세계관에 뚝 떨어져 나 홀로 살아남기를 도전했으나 죽기 직전에 깨어났다.
어쩌면 쓰레기 같은 생각일 텐데, 쓰레기처럼 생각을 분리수거하는 건 어렵다. ‘언젠가는 글 쓸 때 도움 되지는 않을까?’라는 기대로 상념을 잊지 않으려 메모도 한다. 그렇게 쌓인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버릴 때가 됐는데, 망설여진다. 지금까지 쓰지 않았다면 안 쓴 이유가 있을 것일진대, 여전히 ‘혹시나 싶어’ 남겨둔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강박을 지닌 사람을 호더(hoarder)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생각 호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