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허무하게 끝났다. 천둥, 번개 혹은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종종 쏟아졌지만, 6월이 다 지나가도록 장마는 소식이 없었다. 달력을 넘겨 7월이 되어서야 늦깎이 장마가 시작되었다. 40년 만에 가장 늦은 장마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몇 차례 장맛비를 내린 장마전선은 17일 만에 완전히 남쪽으로 물러났다. 그렇게 장마는 끝났다. 중부지방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로 짧은 장마였다. 기간이 짧다 보니 강수량도 적었다. 7월 한 달간 중부지방에 내린 비는 평년 대비 40%밖에 되지 않았다. 장마철에 가뭄을 걱정하게 된 것이다.

태풍 하이선, 태풍 코브라 등

폭염, 장마가 물러나자마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정말이지 숨 막히는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낮에 뜨거워진 도시는 밤이 되어도 식지 않았다. 북태평양 고기압, 티베트 고기압, 그리고 푄 현상 등 고등학교 지구과학 교과서에서 봤던 단어들을 연일 미디어에서 언급했다. 동병상련이랄까? 더욱 심각한 폭염을 겪고 있던 북아메리카와 유럽이 저녁 뉴스에 자주 나왔다. 여름이 건조한 이 지역에 발생한 폭염은 숲을 바짝 마르게 만들었고, 작은 불씨로도 큰 산불로 번졌다. 안타깝게도 미국 서부와 남유럽 산불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폭염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7월 폭염 일수는 전국 평균 8.1일로 관측 역사상 폭염이 가장 길었던 1994년의 17.7일, 그리고 둘째로 길었던 2018년의 15.4일에 비해 짧았다. 무더위가 다소 늦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고작 8일 내외? 아마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서울 시민들은. 사실 폭염 일수는 지역적으로 큰 편차를 보인다. 7월 한 달간 서울의 폭염 일수는 전국 평균의 2배에 가까운 15일간 이어졌다. 지난 50년간 7월 기준으로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열대야는 더욱 심각했다. 폭염 일수보다 긴 17일 동안 열대야가 발생했다. 역대 2위 기록이었다. 말 그대로 기록적 폭염이 서울을 덮쳤던 것이다.

반면 이웃 나라 중국은 매우 다른 날씨를 보였다. 한반도가 폭염에 시름하고 있을 무렵 중국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7월 중하순 허난성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관측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폭우였다. 단 사흘 만에 1년 동안 내릴 비가 내렸다. 보통 장맛비는 장마전선을 따라 동서로 길게 내리거나, 저기압이 동반하는 전선을 따라 띠 형태로 내린다. 그러나 허난성 폭우는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동그랗게 한 지역에 집중됐다. 평소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아니었던 탓에 짧은 시간 불어난 빗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저지대, 지하 차도, 혹은 지하철에서 희생됐고, 여전히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가 많다.

폭염과 폭우가 동시에 발생한 동아시아 날씨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바로 태풍의 등장이다. 부지불식간에 이미 11호 태풍이 발생했다. 도쿄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태풍이 북상한 것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올해 열 번째로 발생한 태풍 ‘미리내’는 일본 남쪽으로 접근하면서 올림픽 폐막식을 위협했다. 다행히 일본 동쪽 해상으로 빠져나갔지만 8월 본격적인 태풍 시즌을 알렸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발생하는 태풍은 연평균 25번 내외이다. 이 중 서넛이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다. 특히 8월 태풍의 피해가 가장 크다. 작년 한반도에 영향을 끼친 네 태풍 중 셋이 8월에 발생했다.

태풍의 존재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대풍’이란 이름으로 수백 차례 등장한다. 그러나 태풍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수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태풍을 최초로 관측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1944년 12월, 필리핀 근해에서 정비 중이던 미 해군 함대에 태풍 ‘코브라’가 들이닥쳤다. 당시 함대에 장착된 최신 레이더는 이 태풍을 최근접 지점에서 관측할 수 있었다. 흑백 화면을 가득 채운 새하얀 구름 무리. 동그란 구름 무리는 함대 전체를 덮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이 의도치 않은 관측의 대가는 매우 컸다. 미 해군 구축함 3척이 침몰했고 사망자가 790여 명 발생했다.

이제는 기상위성이 태풍을 관측한다. 1960년 첫 기상위성이 발사된 이래 여러 정지궤도 기상위성이 지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 발사한 천리안위성 2A호를 통해 태풍을 상시 감시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 태풍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체 태풍 중 4등급 이상 강력한 태풍의 비율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력한 태풍 비율이 50%를 넘어서고 있다. 기상청 관측도 뚜렷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 풍속이 가장 강했던 태풍 여덟 번이 모두 2000년 이후 발생했다. 여기에는 작년 9월 태풍 ‘하이선’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과거 관측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장기 추세를 정량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태풍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태풍 철이 되면 종종 태풍 진로 예보 콘테스트가 열리곤 한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지만 매년 언론에 등장한다. 한국, 일본, 미국 혹은 유럽의 예보 결과를 가져다 놓고 누가 실제와 더 가깝게 예보했는지 비교한다. 물론 비교 분석을 통해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직면한 재난을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정보가 유용한 정보다. 어떤 예보가 맞는지 틀리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짧았던 장마, 강력했던 폭염, 그리고 시작된 태풍의 계절. 점점 강해지고 있는 태풍, 올해는 예외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