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재동 백송’을 마주한 날엔 바람이 나무를 거칠게 휘돌았다. 나무가 우는 듯했다.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백송이 자리한 언덕 아래서 바람이 잦기를 기다렸다. 폭설로 상처 입은 애처로운 가지 위에 까치집이 흔들거렸다. 그 무게마저 염려되었다. 순해진 바람결에 새소리가 들리자 백송의 너른 품이 보였다.
숱한 격랑을 겪은 터에서 지금의 헌법재판소를 품은 백송. “쓰러질 나무에는 까치가 집을 짓지 않는다”는 말에 집 지은 까치도 고마워졌다. 백송은 더디 자라고 키우기 까다로운 나무다. 재동 백송은 ‘통의동 백송’과 함께 수령이 600년 이상으로 알려졌다. 우람하기로는 통의동 백송, 상서로운 흰빛으로는 재동 백송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통의동 백송은 태풍에 쓰러져 고사해 밑동만 남았다. 이후 수령을 측정해보니 300년 좀 넘었다고 했다. 재동 백송의 시간도 반 토막으로 뚝 잘라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백송은 나무껍질이 넓은 조각으로 벗겨지며 얼룩무늬 전투복처럼 보이다가, 해가 가면서 흰 머리카락 늘듯 흰빛이 더해진다.
재동 백송은 높이 17m로 두 갈래로 갈라져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모습이다. 이 일대는 ‘재동’이란 지명 유래를 가져온 피의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1885년 4월 서양식 근대 병원을 세워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의미’로 사람을 살린 곳이다.
당시 알렌이 남긴 제중원 보고서에는 백송 의미를 추정해볼 수 있는 ‘신성한 나무(Sacred Tree)’란 표기도 등장한다. 제중원이 이전하고 나서는 여학교 기숙사와 교정으로 밝은 기운이 가득했던 곳이었다. 이제 백송은 헌법재판소의 뒤뜰 언덕에 후계목을 두고 흰빛을 더 발하고 있다.
노거수(老巨樹)마다 특별한 느낌이 있다. 포근한 나무가 있는가 하면, 두려운 나무가 있다. 유달리 흰빛이 더해지는 재동 백송은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모두 지닌 경이로운 천연기념물이다. 최근 산불 피해로 망연자실하다, 백송을 찾았다. 주변엔 봄꽃이 피고 백송 보호 안내판이 들어섰다. 아침이라 그런지 까치 소리가 크게 들렸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는데 우리에겐 어떤 봄이 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