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가 관내 인문계 고교인 서초고등학교를 북쪽으로 3㎞ 떨어진 잠원동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박성중(朴成重) 서초구청장은 12일 구청을 방문한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에게 이같은 계획을 보고하고, 학교부지 확보를 위해 서울시의 적극 지원을 요청했다. 오 시장은 이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서울시 교육청도 서초고 이전 추진에 적극 찬성 입장을 보인만큼 부지매입만 완결되면 이전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교육청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학교 민원을 구청이 발벗고 나서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른바 ‘강남 8학군’지역 중 하나인 서초구는 지난 1980년 서울고(신문로→서초동), 1986년 동덕여고(창신동→방배동)가 강북에서 옮겨왔지만, 관내에서의 이전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 교육청 관할 업무를 구(區)가 떠맡겠다고 나선 이유는 고등학교들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어 많은 학생들이 등하교에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2만5000여명인 서초3동 일대에는 서초고·서울고·상문고 등 고등학교 3개가 몰려있는 반면, 8만명에 달하는 잠원동 및 반포1·3동에는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통상 인구 3만명당 고등학교 하나가 있어야 하는 기준에 한참 모자란 상황이다. 현재 잠원동과 반포 1·3동 지역의 인문계 고교생 1567명 중 통학거리가 2㎞ 이내인 학생은 전체의 26%인 409명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급 과잉’인 서초동의 학교 하나를 ‘고등학교 사각지대’로 옮길 경우 학교 쏠림으로 인한 통학 불편이 크게 해소된다는 것이다.
구가 이전부지로 계획한 곳은 현재 학교부지로 돼 있는 잠원동 61-6일대 3194평의 부지로, 현재 학교(서초3동 1504번지, 4112평)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다. 서울시의 협조로 올해 안에 부지매각 협상이 이뤄져 공사에 들어갈 경우 이르면 2010년쯤부터는 새 교사(校舍)에서 신입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축 교사 1세대 학생들은 선배들과 일면식도 없게 되지만, 졸업기수는 그대로 이어진다.
서초구는 서울시 소유로 되어 있는 학교 부지를 구·교육청 예산에 민자 등을 더해 사들일 계획이다. 서초구는 기존의 서초3동 학교 부지 매각대금(820억원)으로 잠원동의 새 교사 토지 매입비(400억원)와 건축비(150억원)를 쓰고도, 270억원 정도가 남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돈으로 이전하는 서초고를 '영어 특화학교'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입생 배정 과정 등에서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지만, 영어 교육 인프라만큼은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 못지 않게 꾸민다는 구상이다. 정부와 시 교육청 방침상 강남 지역에는 특목고를 허가하지 않는데 대한 대안이다. 이에 따라 새 건물에는 첨단 어학실·영어도서관·멀티미디어 자료실 등을 들이고, 노트북 사용을 위한 무선 인터넷 시스템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서초구 우상길 문화행정과장은 "어학 교육 특성화를 통해 서초고를 지역 명문고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서울고와 상문고가 남학교라 남녀공학인 서초고가 이사가면 서초3동 일대 여학생들을 둔 학부모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 서초구는 일단 서문·동덕여고 등 인근 학교로 여학생 수요를 소화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는 서울고와 상문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교육청과 검토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