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20일 낮 12시5분쯤 일본 도쿄 외곽 마치다(町田)시 조용한 주택가에서 총성 9발이 연쇄적으로 울렸다. 자신의 아파트를 둘러싼 경찰을 향해 살인 용의자가 발포한 것이다. 이 중 1발은 경찰차 범퍼를 뚫었다. 일본 경찰청은 특수기습부대(SAT)를 현장에 투입했다.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인근 초등학교는 수업을 중단한 채 학생들을 보호했고, 일본 방송은 대치 현장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첫 총성이 울린 것은 이에 앞서 오전 11시30분쯤.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하라(相模原)시 편의점 앞에서 ‘야쿠자’(조직폭력단) 남성 1명이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용의자는 같은 폭력단 ‘교쿠토카이(極東會)’ 조직원으로 추정된다. 1차 총격 후 용의자는 자신의 아파트로 달아났다가 경찰에 포위당하자 다시 총격을 가한 것이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은 이날 밤까지 계속됐다.
요즘 일본 언론에는 미국의 ‘버니지아 공대 참사 사건’이 부각될 틈이 없다. 미국발 총기 사건 뉴스는 17일 나가사키(長崎)시 이토 잇초(伊藤一長) 시장이 야쿠자가 쏜 총탄 2발에 절명한 사건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라앉고 ‘조승희’라는 이름이 일본의 뉴스 전면에 등장하려 하자, 또다시 국내에서 일어난 총격 살인사건이 일본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나가사키 사건은 이토 시장의 평소 ‘반핵(反核) 노선’ 때문에 사건 초기 ‘정치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일본 경찰은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 간부의 이권과 개인 원한에 따른 것으로 매듭짓고 있다. 20일 ‘마치다 총격사건’도 야쿠자 조직 내 알력 때문인 것으로 일본 언론은 풀이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도쿄 중심가인 아자부(麻布)와 시부야(澁谷) 지역에서 이틀간 연쇄적으로 일어난 총격 살인사건 역시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와 도쿄 최대 조직 ‘스미요시카이(住吉會)’의 영역 다툼 중 발생한 것이다. 일본에서 총기 소지는 불법이다.
야쿠자가 아닌 일반인 ‘사이코’에 의한 ‘묻지마 살상’도 꼬리를 물고 일본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20일 일본 아침 뉴스에선 ‘스즈키 히로카즈(鈴木洋一)’란 이름이 ‘조승희’를 압도했다. 일본 경찰이 지난 5일 가와사키(川崎)시에서 일어난 살인미수 사건 용의자로 붙잡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는 이날 밤 귀가하던 회사원 여성을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