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천곡리(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가난한 시골마을의 10살 소년 석필은 공부를 무료로 가르쳐 주는 강습소가 마을에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 어린 발걸음을 뗐다. 그리곤 그곳에서 평생의 스승이 될 ‘그분’을 만났다. 심훈 소설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인 농촌계몽 운동가 최용신(1909~1935·사진)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을 마음속 ‘상록수’로 여기며 성장한 소년은 이제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스승의 큰 자취를 기리는 ‘최용신 기념관’ 건립에 물심양면으로 온 힘을 보태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허구로만 여겨온 ‘청석골 강습소’(실제 이름은 ‘샘골 강습소’)의 산증인인 홍석필(83·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씨다.

올 9월 개관할 예정인 최용신 기념관 건립에 1억5000만원을 쾌척한 제자 홍석필씨가‘최용신 선생 사진자료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씨는“선생님은 평생 내 인생의 좌표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달 26일 만난 홍씨는 “선생님은 평생 내 인생의 좌표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 2004년 최용신 기념관이 건립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지고 있던 건물과 땅을 팔아 선뜻 1억 5000만원을 내놓았다. 현재 공사가 한창인 기념관은 오는 9월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상록수공원 내에 문을 열 예정이다. 지상 1층, 지하 1층의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품과 사진 등 자료들이 전시되며 샘골 강습소도 재현된다. 요즘 관절염으로 바깥 출입을 거의 못하는 홍씨지만 집으로 찾아온 관계자들을 만나며 전시관의 고증도 돕고 있다.

“기념관 계획을 듣고는 ‘그래 이거다, 이거나 해 놓고 죽자’ 싶었어요. 선생님의 애국정신을 이어가는 게 내 평생의 꿈이었으니까요. 이제라도 선생님 기념관을 볼 수 있어 참 좋아요.”

70여년 전 아이들 앞에 선 최용신은 흰 저고리, 까만 치마, 곱게 빗은 머리에 단정히 핀을 꽂은 청순한 모습이었다고 홍씨는 회고했다. “미인이었죠. 냉철하고, 똑똑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했지요. 선생님 뵐 때마다 늘 내 가슴이 설�으니까…(웃음)”

최용신은 일제의 탄압 아래 풀 죽어 있던 학생들에게 “너희들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며 격려해 주었다. 특히 그녀가 잔잔하게 풀어 놓던 ‘미래’,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소년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최용신과 아래윗집에 살았던 소년 홍석필은 틈만 나면 여선생님 자취방으로 놀러가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최용신은 안타깝게도 제자 석필과 만난 이듬해인 1935년, 속병을 얻어 만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졌다. 그러나 어린 제자는 선생의 뜻을 간직하고, 이어갔다. 21세 때 징용당해 인천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복무했던 홍씨는, 광복이 되자 고향인 샘골로 돌아와 방앗간을 차리는 것으로 농촌 운동을 시작했다.

“물방아를 이용해 발전(發電)을 했어요. 전기가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인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전등불이 훤한 우리 샘골을 부러워했죠. 덕분에 우리 마을은 국가로부터 ‘신생활 모범부락 표창’도 받았지요.”

소설 ‘상록수’를 읽은 느낌을 물었더니 홍씨는 뜻밖에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읽어보나 마나지요. 다 아는 얘긴데….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는 보았어요. 인천 애관 극장까지 80리 길을 걸어가서 봤는데, 비슷하긴 했지만 순 연애만 한 것처럼 나와서 실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