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그렇게 연주하시니까 왕년의 ‘때깔’이 나오시는데요?”, “아이고, 야 부끄럽다. 빨리 블루스 솔로 좀 넣어봐.”

지난 4일 오후 홍대 앞 KT&G 상상마당 지하 공연장. 한국 펑크(funk) 기타의 두 대가(大家)가 현란한 기타 연주로 어우러졌다. 바로 최이철(53)과 한상원(47). 최이철은 70~80년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밴드 ‘사랑과 평화’의 리더로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등을 히트시키며 한국 가요계에 펑크스타일을 확립시켰다. 한상원은 기타리스트의 길에 접어들며 그런 최이철의 연주에 감화돼, 미국 버클리 음대 유학을 거쳐 현재 한국 최고의 펑크 전문가로 인정받는 인물. 호원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펑크는 주로 엇박자를 활용해 선율보다 진한 리듬감을 강조하는 흑인 음악의 한 종류. 요즘 세계 대중음악계의 주류인 솔(soul)과 힙합(hip-hop)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마니아의 충성도가 절대적이다. 한국 최고의 펑크 기타리스트로 통하는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두 사람은 오는 14일 오후 8시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 요즘 자신들의 밴드를 이끌고 연습에 전념하고 있다. 편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기타 선율에 푹 빠져든 이들을 현장에서 만나 물었다. 왜 당신들은 펑크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14일 콘서트를 여는 한국 최고의 펑크 기타리스트 최이철(왼쪽)과 한상원.

왜, 두 사람은 펑크에 빠졌나?

한상원은 “최이철이 ‘사랑과 평화’를 통해 화려한 전성기를 일구던 시절을 현장에서 봤다”고 했다. “70년대 후반이었죠. 그때 제가 정원영씨와 ‘쉼’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막 음악계에 입문했을 때였는데, 저희가 소속된 기획사에 바로 ‘사랑과 평화’가 있었어요. 그때 정말 대단했죠. ‘사랑과 평화’가 클럽에서 연주하며 받는 한 달 개런티가 요즘 돈으로 따져보면 억대였어요. 아파트 한 채 값이 한 300만~400만원이었는데, 형들이 그때 한 달에 1400만원쯤 받았으니까 최고였죠.”

한상원은 “이철이형 연주를 보며 리듬을 어떻게 쪼개서 운용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며 “펑크 음악의 독특한 미학에 빠져든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말했다. 미8군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한 최이철은 “미국 본토의 펑크 음악을 들으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멜로디가 리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리듬이 살아있지 않으면 그건 죽은 음악”이라고 했다.

“펑크가 가장 생명력 넘치는 음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리듬의 힘 때문이죠.”(최이철), “버클리 음대에서도 항상 교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리듬이 최우선’이라는 것이었어요.”(한상원)

한국 펑크 음악의 역사를 세우다

최이철의 맛깔스러운 기타 연주와 담백한 창법이 빛을 발하는 명곡 '한동안 뜸했었지'. 최이철은 "이 곡은 파격적인 펑크스타일 리듬 때문에 사실은 음반에서 빠질 뻔했다"며 웃었다. 이 곡의 작곡자는 '그건 너'의 이장희. 당시 '사랑과 평화' 소속사의 대표였던 그가, 직접 곡을 써 '사랑과 평화' 멤버들에게 연주해보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이철은 "그 곡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리듬 파트를 제가 좋아하던 펑크스타일로 바꿔버렸어요. 그런데 장희형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한 곡만 뺐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에요. 양보할 수 없었어요. 저는 다른 곡은 다 빼도 좋은데 이 곡만은 뺄 수 없다고 버텼죠."

고집의 결과는 ‘대박’이었다.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는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최이철은 “하루에 5~6회씩 같은 곡을 연주하려니까 너무 힘들었다”며 “다 집어치우고 미 8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냈다”고 웃었다. 한상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펑크 히트곡이 바로 ‘한동안 뜸했었지’ 아니냐”며 “이 노래로 ‘사랑과 평화’는 한국 펑크 음악의 역사를 세웠다”고 했다.

왜, 두 사람은 여전히 젊은 음악을 하나?

두 기타의 대가(大家)는 말과 행동에 꾸밈이 없었고, 어린 아이처럼 솔직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두 사람 모두 20대 젊은 후배들과 밴드를 꾸려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한상원 밴드’와 ‘최이철 밴드’를 통해서다.

두 사람의 인생에 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한상원은 “기타는 내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이고 음악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최이철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기타와 음악이 있어 내 삶은 행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