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세계적인 유전학자인 미국의 제임스 왓슨(79)이 1968년부터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암 연구기관인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CSHL)를 그만두었다. 왓슨은 1953년 25살 때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유전자의 본체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의 분자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1962년 노벨상을 받았으며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주도한 거물이다.

왓슨의 퇴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 10월 14일자 인터뷰 기사가 빌미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9월에 발간된 저서인 ‘지루한 사람을 피하라’(Avoid Boring People)를 홍보하기 위해 런던에 가서 “아프리카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서방의 사회 정책은 흑인과 백인의 지능이 동등하다고 전제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저서에도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지능이 열등하다고 주장한 대목이 나온다.

왓슨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선데이 텔레그래프’에는 “만일 뱃속의 태아가 동성애자로 판명된다면 산모에게 낙태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그의 말이 대서특필되었다. 그밖에도 깜짝 놀랄만한 발언을 곧잘 했다. 비키니를 입은 여인과 베일을 쓴 아랍여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햇빛에의 노출이 성적 충동과 관계가 있으므로 서양 여자들이 애인으로 라틴계 사내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자 검사를 해서 머리 나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왓슨이 이번에 흑인 비하 발언을 한 것은 그가 우생학(eugenics)에 경도됐음을 보여준다. 우생학은 소극적 우생학과 적극적 우생학으로 나뉜다. 전자는 생물학적 부적격자, 이를테면 정신이상자, 저능아 또는 범죄자를 집단으로부터 조직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인 반면에 후자는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형질을 가진 적격자의 수를 늘리려는 연구이다. 우생학은 20세기 초반부터 대부분의 국가, 특히 미국의 공식적인 정부정책으로 채택되었다. 범죄, 빈궁 및 사회악에 대한 만능약으로서 호소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배층은 하층민을 생물학적 열등자로 몰아붙여 그들에게 사회악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공권력을 임의로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고등인종인 아리안 민족의 피가 하등인간의 피와 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유태인, 집시, 러시아인을 수천만 명 학살함에 따라 미국의 우생학 운동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일부 노벨상 수상자들은 우생학을 지지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프랜시스 크릭은 “어떤 신생아를 막론하고 유전적 자질에 대한 검사를 받기까지는 인간으로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 검사에서 실격하면 생존권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1954년 노벨화학상을 탄 라이너스 폴링은 “젊은이는 모름지기 각자의 유전자형을 나타내는 문신을 이마에 새겨야 한다. 그러면 무서운 유전병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자손을 많이 퍼뜨려 인류의 지능 수준을 저하시키므로 지능지수가 100 미만인 사람들은 아기를 낳지 못하도록 거세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우생학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지능의 유전성 여부이다. 1994년 10월 출간된 ‘종형 곡선’(The Bell Curve)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지능지수로 사람을 나누면 그 분포가 종 모양을 이룬다는 전제 하에 저능아의 대부분이 흑인이라고 주장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왓슨은 ‘종형 곡선’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한 셈이다.

왓슨의 인종 차별적인 발언에 여론의 비난이 빗발친 까닭은 유전공학이 발달할수록 우생학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경제 능력에 따라 유전자가 보강된 슈퍼인간과 그렇지 못한 자연인간으로 인류사회가 양극화 되지 말란 법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