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은 �어요”를 노래하는 찹쌀떡 장수, 주인공의 감방 동료, 장발 단속하는 경찰, ‘3㎝ 춤’을 추는 조폭 보스, 목사님, 여간호사, 중국집 배달원, 동네 할머니…. 단 한 명의 배우가 이렇게 여러 배역을 가로지르는데,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를 다 들어줄 틈이 없다. 얼른 다음 인물로 건너가야 하니까.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샤인(Shine·연출 김달중)’에서 최재웅(29)이 맡은 ‘M’이다. M은 ‘멀티맨(multi-man)’의 약자. 100분짜리 공연에서 모두 스물두 개의 가면을 갈아쓰는 최재웅은 “잘못하면 ‘캐릭터 쇼’처럼 비쳐질 수 있어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소극장 뮤지컬에 멀티맨이 흔하다. ‘멀티맨 있는 뮤지컬과 없는 뮤지컬’로 나뉜다고 할 정도다. ‘샤인’을 비롯해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미스터 마우스’에 멀티맨이 등장하고, 12월 두산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할 ‘아이 러브 유 비코즈’에서도 멀티맨을 만날 수 있다. 배우 전병욱은 ‘김종욱 찾기’에 멀티맨으로 출연해 스타가 되기도 했다.

뮤지컬‘샤인’에서 멀티맨으로 22개 인물을 표현하는 최재웅의 변신 릴레이. 왼쪽부터 목사, 아버지.

20평 남짓한 무대에서 60명 넘는 사람(배역)들을 보여준 ‘아이 러브 유’는 소극장 뮤지컬에서 멀티맨의 성공 모델이었다. 남녀 관계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두루 훑은 이 로맨틱 코미디는 2004년 말 한국에 상륙, 배우 4명이 벌이는 60여 개 배역 잔치로 주목 받으며 2년 넘게 흥행했다. 2005년엔 ‘더 씽 어바웃 멘’에서 주인공이 아닌 배우 김경선이 절묘한 다역(多役) 연기로 이름을 알렸다.

첫사랑 찾기라는 달콤한 소재를 뽑아낸 ‘김종욱 찾기’는 많게는 25역을 하는 멀티맨의 변신으로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월드컵 기간에도 끄떡없이 흥행한 이 뮤지컬은 올 겨울 시즌3까지 나왔다. 바텐더→인도인 여행 가이드→다방 여종업원→할머니→스튜어디스→젠틀맨 등 멀티맨의 숨가쁜 변신에 대해 관객은 “역시 공연의 백미는 멀티맨!” “멀티맨이 없었다면 허전했을 것 같아요”라는 평을 남기고 있다.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비코즈’를 연출한 한진섭은 “관객에게 지루할 틈 안 주고, 소극장 무대에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 드라마보다 멀티맨의 쇼로만 관심이 쏠릴 수 있어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다”라고 말했다. 최재웅도 “배우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배역으로 가는 게 편하다”며 “매일 ‘튀지 말아야지’ 다짐하는데 솔직히 힘겹다”고 했다.